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하고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워준 소중한 친구

▲ 윤기현 군의원

 

 

▲ 친구 강기석
나는 강진읍 기룡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폐교된 강진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졸업이후 강진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졸업은 하지 못했다.

이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던중 목포에서 사진일과 양복점 일을 배우게 됐다. 그곳에서 일을 배우다가 26살이 되던해에 군입대를 하게 됐다. 군 제대후 나는 강진으로 이사와 나의 친형님과 함께 양복점을 개업했다. 지금 강진읍 터미널 부근 상가를 얻어 형제라사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형님의 사정으로 양복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그러던중 결혼을 하게 됐고 아내와 함께 읍내에서 이불집을 개업했다. 이불집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장사도 꽤 잘되는 편이었다.

장사가 잘되자 나는 욕심이 생겼고 커텐사업으로 확장했다. 커텐 제작이 내가 배운 양복점 일과 비슷했고 나의 아내는 자수전문가였다. 부부가 각자 자신의 특기를 살렸던 것이다.

그러던중 물건 구입을 위해 우연히 광주를 가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건이 내 인생에 있어서 방향을 바꿔놓은 일이었던 것 같다.

이때는 1980년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광주 남평을 가보니 광주시민들이 걸어서 광주에 있는 전남도청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고 그곳에서 군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도 볼수 있었
다.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러던중 갑자기 무서운 총소리와 함께 내 옆에 서 있던 한 학생들이 총을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는 두려웠지만 죽어가는 학생을 보고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해주었다. 나도 이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 내가 운이 좋았던 탓인지 충장로 근처에서 우연히 강진의 한 선배를 만나게 됐다. 그 선배는 나에게 위험한 곳에 왜 왔느냐며 질책을 하시고 오토바이로 나를 태워 강진까지 태워다주셨다.

이 일은 나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고 아직도 5.18 관련 행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이처럼 파란만장했던 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사람 한명을 꼽자면 강기석이라는 친구를 꼽고 싶다. 이 친구는 나와 중학교 동창이다.

칠량면 출신으로 나와는 중학교에서 만났다. 하지만 나는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탓인지 이 친구와 학창시절에는 대화를 자주 나눠보지는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모두들 사회생활을 하게 됐고 나도 강진에서 장사를 하면서 살면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강진에서 살고 있었기에 읍내를 오가며 종종 만나곤 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학교 동문모임이 제대로 활성화가 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에 나와 몇몇 친구들은 얼굴이라도 정기적으로 보자는 의미를 담아 모임을 결성하기로 결정했다.

이 모임이 바로 105회라는 모임이다. 강기석이라는 친구도 이 모임에 함께 했던 친구였다. 105회는 강진중앙초등학교 55회, 강진중학교 18회, 강진농고 32회 친구들이 함께 모인다는 의미에서 숫자를 합쳐 105회라고 이름을 붙였다.

친구와 나는 이 모임 활성화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초창기 사무국장을 맡아 2년동안 모임을 이끌기도 했고 나도 3대 회장을 역임하며 모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회원들도 많이 도와준 덕분에 많은 회비도 적립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지난해에는 회관도 마련했다. 회관이 마련된 이후 친구는 회관 활성화를 위해 거의 매일 나오며 지키곤 한다.

내가 6대 군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던 도중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에도 친구는 내일처럼 나와 가족들을 걱정해주며 자주 병원을 오가며 위로해주기도 했다. 항상 나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를 해주었고 이 덕분에 나는 다시 힘을 내 8대 군의회에 입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8대 군의회의원 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혔을 때 친구는 사실 나의 건강을 염려하며 말렸다. 부의장으로 활동했던 6대 군의회 당시처럼 다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악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심이 확고했기에 친구들을 설득시켰다. 나의 생각을 전해들은 친구는 105회 친구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나도 35년동안 민주당을 지켜온 사람이라면 친구도 민주당 운영위원을 맡아 활동해온 당원이었다. 지난 대선때에도 나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

이때에는 민주당의 조직이 사실상 무너졌을 때였기에 선거운동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나와 함께 매일 읍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이 친구는 과묵하면서도 항상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친구이다. 유심히 지켜보다가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경우에는 조용히 나에게 조언을 해주며 나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응원을 해준다. 이 때문에 나는 8대 군의회에서도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뿐만 아니라 105회 사무실에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함께 나눠먹으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사무실을 떠난 이후에도 혼자서 끝까지 남아 사무실에 버려진 쓰레기와 물건들을 정리할 정도로 책임감도 강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 자신도 이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항상 마음가짐을 배울 정도로 본받을 점이 많은 친구이다. 항상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였다. 이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인기가 많았고 모두들 이 친구를 좋아했다.

앞으로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이 친구와 함께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나도 친구처럼 8대 군의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의정활동을 임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이제 모두 나이가 들어가면서 걱정은 건강문제이다. 모든 친구들이 건강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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