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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띠우는 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우리 오빠에게학생부 최우수상 김주현(강진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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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2  11: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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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현양
안녕 오빠 잘 지내?

나 막내 동생 주현이야. 오빠를 못 본지 벌써 6개월이나 지났네. 시간 참 빠르다 건강은 잘 챙기고 있지? 나는 고3이라 조금 힘들긴 하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어

오늘은 내가 오빠한테 편지를 한 통 써보려고 해 오빠한테 편지 쓰는 게 처음이라 조금 떨린다. 사랑의 편지라고 평소에 감사하거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못 전한 말들을 전하는 편지가 있는데 오빠한테 그동안 못했던 말들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돼서 이 편지를 쓰게 됐어.

어렸을 때는 이런 편지를 적으라고 하면 아빠랑 할머니 밖에 생각나지 않았는데  고3이 된 지금 내 머릿속엔 오빠가 떠오르더라. 

오빠에게 고마운 일들을 하나씩 적어보려고 해 고마운 일들을 이야기하려면 우리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서 살짝 말해야 될 것 같아. 예전으로 한 번 돌아가 보면 우리는 참 힘든 인생을 함께 견디며 살아온 것 같아.

내가 2살 때 언니가 5살 때 오빠가 7살 때  아빠께서 사업에 실패하셔서 우리 집은 한순간에 바닥을 쳤었지. 엄마께서는 가난을 견디지 못하시고 결국 아빠랑 이혼하시고 집을 나가버리셨지. 그래도 아빠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든 가족끼리 뭉쳐 살아야 한다면서 온갖 힘든 일을 하셨었지.

매일 새벽마다 나가셔서 노가다를 뛰시기도 하고 택배 일을 하시기도 하고 화물차를 운전하기도 하셨지. 그래서 곰팡이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반지하방에는 항상 나와 언니 오빠 이렇게 셋이 남겨져 있었어.

그 때 우리 모두는 어렸었어. 배고픔과 어른이 없는 집에 남겨진 두려움을 견디기엔 정말 어린 나이였어. 그런데 그 어린나이에도 오빠는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를 아빠처럼 돌봐줬었어.

밥을 차려주기도 하고 청소도 하고 나랑 언니의 머리를 묶어 주기도 하고 아플 때 보살펴 주기도 했었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땐 오빠랑 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나는 혼자 집에 남겨져 있었어. 혼자 남겨졌을 때 정말 무섭고 외로웠었는데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오빠는 학교가 끝나면 언니랑 같이 바로 집으로 달려와서 나랑 놀아 주곤 했었어.

오빠도 초등학생이여서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놀고 싶기도 했을 텐데 항상 우리를 돌봐 줬었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지.

그래서 우리는 아빠랑 살던 인천을 떠나 할머니가 계시는 강진으로 오게 됐었지. 그때가 내가 6살 언니가 9살 오빠가 11살이었네.

강진에 오면서 아빠랑 정말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 아빠가 안 계시니까 강진에 와서도 오빠의 책임은 덜어지지 않았어. 한 집안의 가장이 됐기 때문에 어쩌면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됐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없는 강진에서도 오빠는 정말 아빠처럼 우리를 사랑으로 돌봐줬어.

학교에서 상 받아 오면 칭찬도 해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듬직하게 우리를 감싸 줬었어. 그리고  우리가 잘못 했을 때에는 아빠처럼 혼내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면서 우리를 예의바르고 거짓말 하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우리를 잡아줬어. 사실 예전에 나는 오빠를 미워했었어.  

우리를 너무 엄하게 키운다고 생각했었거든 사소한 말투 하나하나에도 혼을 내서 오빠랑 말하기 싫어질 때도 많았어.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어리고 어리석었다고 생각해.

오빠가 그렇게 엄하게 가르쳐 준 덕분에 내가 이렇게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래서 오빠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해. 오빠가 우리를 돌봐 줘서 고맙다고 쭉 생각을 해왔는데 요즘 들어서 오빠 생각이 더 많이 나더라고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다 보니 학업 스트레스와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게 쌓인다는 걸 느꼈어.

그리고 한 때는 사춘기가 와서 정말 예민하고 아무하고도 말하기 싫었던 시절도 있었어. 그런데 이게 나한테만 온 게 아니더라고 내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성장통이더라고  그래서 이런 성장통이 오빠한테도 왔을 텐데 ‘오빠는 집에서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우리를 돌봐 줬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아프더라고.

한창 부모님한테 사랑받고 클 나이에 오빠는 엄청난 책임감을 등에 업고 우리를 돌봐야 했고 사춘기가 와서 틱틱 대고 투덜댈 나이에도 오빠는 우리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되는지 고민하고 그랬다는 걸 생각하니까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나더라...

일반적인 부모님들도 자식하나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데 오빠는 그 어린나이에 혼자서 얼마나 많은 고민들을 했겠어. 게다가 공부도 해야 하고 본인의 미래도 생각해야 하는 10대였는데 말이야.

그래서 정말 오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 주변에 친구들을 봐도 오빠만큼 철들고 대단한 친구는 없고 친구들의 오빠들을 봐도 오빠 같은 듬직한 오빠는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난 오빠가 정말 자랑스러워. 편지로는 이렇게 고맙다고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데 왜 오빠 얼굴을 보면 말보다 눈물이 더 먼저 나오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오빠를 보면 말해보도록 노력할게 지금은 편지로 읽어줘^^ 

 나는 막내여서 보살핌을 받기만하고 오빠랑 언니한테 도움이 되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어. 지금도 오빠랑 언니는 아빠 가게를 도와준다고 대학교 휴학 까지 하고 하루에 잠도 4시간밖에 못자면서 고생하고 있는데 나는 학교에서 편하게 공부 하고 있잖아. 그래서 너무 미안해

가끔씩 전화했을 때 오빠랑 언니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 그리고 우리 집은 언제까지 힘든 걸까? 언제쯤 가정형편이 나아져서 다 같이 가족여행 한번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자주 하곤 해.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면서 열심히 살아가자 그리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오빠가 나의 오빠여서 정말 고마워 이제는 오빠의 존재만으로도 듬직하고 안심이 돼 오빠 덕분에 아빠, 엄마가 없는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오빠의 조언을 받아서 많은 일들을 순조롭게 해결 할 수 있었고 남들한테 예의바르게 잘 자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바르게 자라게 됐어.

전부 다 오빠 덕분이라고 생각해 오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몰라 오빠가 있었기에 내가 완성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 앞으로도 오빠한테 고마워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 그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묵혀두지 않고  꼭 말할게.

이렇게 오랫동안 묵혀뒀다가 말하려니까 끝도 없다. 하하.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정말 한 번도 한적 없는 말 한번 할께! 우리가족 힘들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 오빠 날 키워줘서 정말 고맙고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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