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강진출신 기업인 뒤에는 강진출신 부인이 있었다

김향수 아남그룹 회장 부인 오승례 여사
강진읍 신성마을 출신, 김회장 부친이 결혼 권유
조용히 내조하며 남편 사업 뒷바라지
(1914~2000)


강진 출신이 창업한 큰 기업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아남그룹과 동원그룹을 꼽는다. 아남그룹은 강진읍 부춘리 출신의 김향수 회장이 창업한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 회사이고, 동원그룹은 수산업종은 물론 금융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로 군동면 내동마을 출신 김재철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이들은 근검절약과 도전정신, 개척정신으로 거대 기업을 일군 사람들인데, 공교롭게도 부인들 역시 모두 강진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강진 출신 성공한 기업인의 뒤에 강진 출신 여성들이 있었던 셈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그들의 가정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국산컬러 TV 1호를 생산한 1974년 1월 오승례여사(가운데)가 남편 김향수 회장(왼쪽)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향수 회장은 주요행사가 열리면 항상 오승례여사를 대동하는 편이었다.
아남그룹 김향수 회장은 1935년 24세되던 해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고향의 연로한 부친으로부터 편지한장을 받는다. 당장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리라는 것이었다. 배필도 정해져 있었다.

강진읍 서문마을에 사는 오승례라는 규수였다. 김 회장 보다 두 살 아래였으나 보통학교(지금의 중앙초등)를 함께 다녔던 동창생이었다. 곧바로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서울 필동의 3평 남짓한 단칸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했다.

김 회장은 생필품을 사고파는 잡화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부부는 자식을 넷 낳을때까지 셋방살이를 했다.

김향수 회장은 훗날 잡화상회에서 자전거상회를 했고, 이어 가발공장으로 사업을 키우고 1968년도에는 아남산업을 차려 우리나라 최초로 반도체를 생산하고, 이어 역시 최초로 컬러TV를 생산하는 등 사업이 승승장구했다.     

김 회장은 “나를 의지하여 한평생을 살겠다는 연약한 여인의 착한 마음씨는 이후 내 인생의 어떤 무엇보다도 나의 향상을 위한 강력한 채찍이 되었고 나를 한발짝 두발짝 진보시킨 활동력이 되었다”며 오 여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시하곤 했다.

두 사람은 4남4녀를 두었으며 김향수 회장은 2003년 6월 2일, 오 여사는 김회장 보다 3년 앞선 2000년에 별세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부인 조덕희 여사
군동면 평리가 친정, 친오빠가 김회장 소개
참치잡이 나간 남편 기다리며 2남2녀 키워
(1938~2012)


김재철 회장의 부인 조덕희 여사는 군동면 평리 출신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평범하지만 극적이다. 여수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재철 회장은 1958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의 실습항해사로 사모아에 출어했다. 그의 나이 24세때의 일이었다.

대양 위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끝에 1961년 지남 2호의 선장이 된 그는 1962년 배에 참치를 가득싣고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전국적인 뉴스였다. 신문들이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다음 출어를 기다리는 동안 김 회장에서 며칠동안 휴가가 나왔다. 잠시 고향 강진에 왔다. 고향에서도 큰 잔치가 벌어졌다. 아버님이 선을 보라고 했다.

어느 날 읍내에서 선을 보고 집으로 오다가 우연히 강진농고 동창인 조영채란 친구를 만났다. 선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하자 조영채 친구가 내 동생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조덕희 여사와 만남이 이뤄졌고 결혼이 성사됐다.

김재철 회장(가운데)이 지난해 11회째 맞은 ̒섬김의 리더십 조덕희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했다. 조덕희 여사는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된 사진이 없는 편이다.
신부의 아버지가 해남군 옥천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있을 때라 결혼식은 1962년 12월 25일 그 학교 강당에서 치렀다. 크리스마스날 치러진 결혼이었다.

김재철 회장은 1963년 1월 말경 (주)동화 1호 선장으로 스카우트되어 다시 서사모아항을 향해 부산항을 떠난다. 결혼해서 부산에 신접살림을 차린지 한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조덕희 여사는 그렇게 언제 돌아올지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2남2녀를 낳고 키웠다고 한다.

김재철 회장의 동원그룹은 비상장회사 18개사를 포함하여 41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조 여사는 2006년 남도학숙에 20억원 상당의 현금과 주식을 기탁해 ̒조덕희 섬김의 리더십 장학금̓을 조성한다. 그녀의 유일한 사회활동이었다.

조덕희 장학금은 지금도 매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광주·전남 출신 대학생 1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조 여사는 2012년 3월 75세의 나이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재철 회장은 결혼생활에 대해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다만 아내와 여행을 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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