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따뜻한 마음과 강한 책임감을 가진 소중한 친구

성전면 오산마을 김오동씨가 1993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친구 조형연 전 성전면이장단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93년 영흥마을서 일하던 중 우연히 만나
구두신고 공사현장 자갈 나르는 일 도와
2004년 성전면지역발전협의회 창립 주도
녹향월촌 농촌마을개발사업도 성공적 추진


나는 성전면 오산마을이 고향이다. 1938년 태어난 이후 지금껏 마을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8살되던 해에 해방이 됐고 이후 9살되던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5학년까지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학교가 운영이 중단되면서 이후 더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내가 어렸던 시절 아버지는 대나무를 베어다가 바구니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이 가난했기에 우리집도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겨내보고자 다른 사람 집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때 나의 나이가 19살 정도였다. 이때 시작됐던 남의 집 살이가 8년정도 계속 해야했다. 이때 1년치 임금은 쌀로 받았다. 당시에 1년치로 쌀 4섬반 정도를 받았다. 쌀 1섬이 110㎏이고 당시에 쌀 1되가 50원 정도였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일하며 모았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집은 더욱 어렵기만 했다. 이에 나는 목수일도 배웠다.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목수일을 했다. 열심히 일을 했던 탓인지 이때부터 가정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농기계도 장만하고 남의 집 땅을 임대받아 농사도 짓고 가을철 수확도 돕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이렇게 돈을 모아 전답을 장만할 수 있었다. 쉽지 않았던 80년 인생이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친구를 꼽자면 조형연 전 성전면이장단장을 꼽고 싶다.

내가 조 단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3~4년 당시였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영흥마을로 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이때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조 단장과 처음 만나게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 단장은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1993년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고향인 영흥마을로 돌아온 것이었다. 내가 만나게 된 것이 이때즈음 이었다.

내가 아직까지 조 단장과 친구처럼 정답게 지내게 된 것은 창고 신축공사를 하는데 갑작스럽게 같은 마을에 살고 친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두를 신은 채로 자갈이 담겨진 통을 등에 짊어지고 2층의 계단을 올라 나르는 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시에 공사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랬다.

자갈을 등에 짊어지고 2층 높이를 오르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50대 중반의 한참 나이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와 조 단장은 절친한 친구사이가 됐다. 내가 현장에서 일을 했던 때는 성전장날이었다. 나는 농담처럼 조 단장에게 “어이 친구, 성전장날이니 시장가서 새참으로 낙지나 좀 사오소”라고 말을 했다.

조형연 전 성전면이장단장
이 말을 들은 조 단장은 별다른 말 없이 “그라세”라고 말하며 시장에 가서 낙지를 사와서 나와 인부들에게 대접했다. 이때 조 단장은 누구에게나 편견없이 친절하고 정답게 대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절친한 친구가 된 이후 조 단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나를 소개시켜주면서 목수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이 때문에 나는 영흥마을에서 일을 도맡아 한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영흥마을이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항상 내가 마을에 일을 하러 갈때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나는 돼지고기와 같은 육류를 좋아하지 않고 명태같은 생선류를 좋아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조 단장은 항상 새참으로 생선을 준비해주었다.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인부들은 육류를 좋아했기에 나에게 “자네 때문에 맛있는 것을 못먹고 명태쪼가리나 먹네”라며 장난처럼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친해진 이후 조 단장에게 처음 만났을 때 왜 갑자기 일을 도와주었느냐고 물었는데 같은 집안 형님 집 공사였기에 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조 단장은 항상 자기 자신보다는 주위 사람을 더 잘 챙겨주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또 나의 일기장이 국가기록원에 기증한 내용이 TV를 통해 방송되자 조 단장은 마치 내일처럼 기뻐하며 전화를 걸어 축하해주었다.

조 단장은 항상 조용하면서도 자기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처리하는 꼼꼼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영흥마을 이장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성전면이장단장, 성전면지역발전협의회장, 녹향월촌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아 지역발전을 위해 봉사도 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3년에는 강진군에서 아름다운 강진만들기 지역개발분야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때 조 단장은 성전면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자치위원회 기능을 강화했고 요가교실, 한자교실 등 주민참여 프로그램 운영과 내고장 농특산물 사주기 운동을 전개해 2억원 상당의 판매고를 올린 공을 인정받아 선정된 것이었다.

조 단장은 지난 2004년에는 뜻있는 성전면 사람들과 힘을 모아 성전면지역발전협의회를 창립했다. 창립이후 초대 회장과 2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성전면민의 날을 만들었고 면민의 날 추진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러내기도 했다. 이때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성전면민의 날은 해마다 5월에 개최되고 있다.

또 지난 2998년에는 녹향월촌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이 사업은 5년간 약70억원 규모의 사업이었고 사업시작후 3년후 중간평가를 실시했다. 중간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권역으로 선정돼 5억3천만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또 2010년에는 마을 공동사업으로 현재 녹차밭 바로 아래에 녹향월촌 한우명품관을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하는데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조 단장은 녹향월촌권역 여성주민들과 강강수월래단도 만들었다. 한달동안 무형문화재 8호 전수자를 초빙해 강강수월래를 배웠다. 이 강강수월래는 추후 민속문화재가 돼 녹향월촌권역 체험객에게 전통놀이로 지도하고 있다.

이처럼 지역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온 조 단장과 앞으로도 우정을 쌓아나가고 싶고 항상 건강하길 기원한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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