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회는 넓은 의미의 가족, 회원들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

김병국 쉐보레 강진대리점 대표가 김복술 광산김씨 강진종친회장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소짓고 있다.
2006년 광산김씨 종친회 가입하며 인연 시작
어려운 시기 종친회장 맡아 활동 재개에 기여
뛰어난 리더십과 강한 책임감으로 솔선수범
어려운 이웃들 위해 기부천사로도 활동


나는 강진읍 서성리 출신으로 현재 강진읍 동화주유소 옆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강진읍에 위치한 강진중앙초등학교와 강진중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광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후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온 이후 1983년 내가 24살 되던 해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때부터는 현재까지 계속 강진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어린 나이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요즘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고향을 잠시 떨어져 지냈기에 내고향 강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진 것 같다.

강진에 내려온 이후 나는 가구점을 운영했다. 강진읍내에서 흥신가구라는 상호로 장사를 했다. 가구점은 98년까지 운영했으나 이후 동생에게 가게를 넘기고 그때부터 자동차 분야에 뛰어들었다.

1998년 당시에는 대우자동차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가구점을 하다가 자동차 영업분야에 뛰어든 것은 당시 자동차 대리점을 하고 있었던 지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나와 함께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던 지인은 2005년 이후 광주로 올라가면서 나 혼자 자동차 대리점을 맡아서 운영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인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고 2006년부터 나의 뿌리인 광산김씨 종친회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가장 존경하는 김복술 회장님을 처음 만나게 됐다.

김 회장님의 첫인상은 누구나 한번 만나면 편안하게 해주는 푸근한 인상에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계신 분이었다. 하지만 추후에 회장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후 군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옆집 아저씨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인상을 갖고 계신 김 회장님이 군장교 출신이라는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지만 김 회장님과 함께 일을 하면서 뛰어난 리더쉽과 강한 책임감을 갖고 계신 모습을 보면서 군장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적도 많았다.

내가 종친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초대 회장님이었던 김종기 회장님 덕분이었다. 나에게 종친회 활동을 권유해주셨던 김종기 회장님이 2008년경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회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이때부터 당시 활발히 활동했던 종친회원들도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종친회 자체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김복술 광산김씨 강진종친회장
그렇게 사실상 운영이 중단됐던 광산김씨 강진종친회가 다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복술 회장님 취임직후부터 였다. 이때부터 광산김씨 강진종친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고 많은 사람들의 권유로 김복술 회장님이 새롭게 회장직을 맡기로 결정됐다.

이때 종친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터였고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회장직을 맡는다는 것에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 회장님은 흔쾌히 회장직을 맡겠다고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임원진을 구성했다. 지난해 연말 종친회 활동에 앞장설 청년회가 조직됐고 최근에는 정기총회까지 진행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회장님은 칠량 송산에서 소 150두를 사육하는 축산인이다.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광산김씨 강진종친회의 재건을 위해 김은주 사무국장과 함께 11개 읍면을 모두 돌아다니며 종친회원들을 만나 가입을 권유해 회원을 늘린 덕분에 종친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 김 회장님은 지난 2014년부터 무공수훈자회 강진군지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농장일과 종친회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항상 매일 아침이면 아트홀 3층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해 무공수훈자회 관련 업무를 하신다. 강한 책임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송산교회 장로로 강진군기독교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추수대동제에 5~6년간 암송아지를 기부하기도 했고 성요셉여고의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암송아지를 기부하며 어려운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송아지를 전달받은 학생은 송아지를 키워 그 송아지가 어미가 돼서 새끼를 낳게 되면 그 송아지는 다른 영세농가에 전달하며 사랑나눔이 확산될 수 있도록 기여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996년도에는 칠량 구로마을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 200만원을 전달했고 지난 2000년도에는 영세농가 자녀들에게 50~100여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수차례 전달하는 등 따뜻한 지역사회로 만드는 데 일조하셨다.

또 나와 함께 종친회 일을 하면서 항상 “종친회원들은 넓은 의미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화합해야 종친회가 발전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사실상 종친회가 활동을 중단하게 됐던 것도 모두 가족처럼 종친회를 생각하는 회원들의 마음이 부족했던 탓이 컸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 회장님이 해주신 말씀을 가슴속 깊숙히 새기고 종친회의 일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만나는 종친회원들에게도 이같은 말을 전하며 종친회 활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김 회장님부터 솔선수범하며 각 마을마다 종친회원들을 찾아다닌 덕분에 최근에는 종친회가 다시 활기를 띄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종친회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아 활동하면서도 힘들법도 하시지만 항상 웃으며 나와 임원진을 격려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존경하게 됐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 광산김씨 강진종친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김 회장님과 함께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또 이제는 고령에 접어드신 회장님을 옆에서 챙겨드리고 싶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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