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광주전남연구원장

광주의 둘레길, 빛고을 산들길.
어느날 금당산 자락 팻말에서 우연히 발견한 빛고을 산들길. 제주올레처럼 광주도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이 있다니 반가웠고, 둘레가 무려 81.5km나 된다니 더더욱 자랑스러웠다.

궁금하기 그지없어 무작정 혼자 나서서 걷던 이 길. 그러나 무등산자락이라 멧돼지와 들개 출몰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다. 함께 걸어야 멀리 걸을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 페이스북에 올려 보았다.
 
필자 글이 호소력이 있었던지 하나 둘씩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마지막 6구간을 걸을 때는 20여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산이 좋고 들이 좋아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쉽게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그래서 만들어진 단체가 ‘빛고을 산들길 사랑모임’, 약칭 ‘빛사모’이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참여하고, 하는 일들도 제각기 달라 이업종교류회처럼 대화도 재미있게 나누게 되었다. 특히 이 길을 만들었던 시청 공무원들이 기꺼이 참가한 덕분에 불편함도 곧장 시정되어 빛고을 산들길이 더욱 걷기 편한 길이 되었다.

이제 빛사모는 고문, 회장, 부회장, 총무, 부총무까지 직책도 만들어졌고, 걸을 때마다 부담되지 않는 회비도 갹출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펴 나갈 수 있는 채비가 되었다.

지난 토요일은 올 들어 첫번째 걷기 행사를 가졌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에는 2구간을 걸었다. 도동고개에서 학운초교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6시간을 강행군 하였다.

혼자서 걷던 이 길을 이날은 33명의 대가족이 걷다보니 참으로 뿌듯하고 기분 좋은 하루였다. 며칠 전까지 강추위였지만 이날따라 봄날처럼 포근한 날씨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지라 서로 뜻만 맞으면 이처럼 쉽게 하나가 되어 일판을 낸다.

어렵게 구한 킬리만자로 커피를 타와 일일이 한 잔씩 따라주는 노교수님, 달걀을 쪄 와서 한개씩 손에 쥐어주는 부인, 무공해 튀밥과자를 나눠 주고 다니는 듬직한 청년이 있어 산행이 더욱 즐거웠다.

그런데 이날따라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70대 중반의 백계남 어르신. 우리를 만나기 전에 혼자서 빛고을 산들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곳곳에 안내리본을 달고 다니던 분. 어렵사리 연락해서 지난해 6구간을 함께 걸었던 노익장.

그동안 여러 차례 걸으면서 축적된 정보가 많은지라 틈만 나면 얘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던 분이었다. 우리는 그분을 고문으로 모시고 머리에 듬뿍 들어있는 소중한 지식을 빼내어 정리해 놓자고까지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 분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지난 가을 홀연히 세상을 하직하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남겨 놓은 노란 리본을 보노라니 오늘 따라 더욱 생각이 난다. 하늘에 계신 백 선생님은 혼자서 외롭게 걸었던 그 길을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걷는 것을 보고 아마도 웃고 계시지 않을까.

이제 매달 세번째 토요일 아침 9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빛고을사랑모임 회원들은 한 구간씩을 걸을 것이다. 올 상반기에는 언론사 주최로 걷기 편안한 구간을 선택, 동호인들이 함께 걷는 기회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후반기에는 광주광역시가 주관하여 또 다른 한구간을 시민들이 손잡고 걸을 수 있는 플랜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그리하여 우리 빛고을 산들길이 시도민들에게 사랑받는 광주의 명품길이 되도록 힘써 보자. 온 국민들이 앞 다투어 찾아올 수 있도록 우리 고장의 둘레길이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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