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바라볼때 편견 버려야 차별없는 세상 온다”

최봉일 대신정기화물 소장이 어려웠던 때에 자신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강진 순복음좋은교회 문종명 목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업실패후 고향으로 돌아와 첫 만남
인연이후 40세 넘어 교회다니기 시작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조언과 격려
불행했던 삶을 행복의 삶으로 바꿔줘


나는 강진읍 평동마을이 고향이다. 강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입대를 하면서 강진을 떠나게 됐다. 군 제대후에는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생활하면서 사실상 고향과 멀어지게 됐다.

22살때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대기업에 다니며 직장생활을 했고 94년에 다른 일을 해보고자 퇴사를 하게 됐다.

퇴사후에는 일본 도쿄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을 갔지만 그때 고베 대지진을 겪게 됐다. 집이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을 처음 경험했던 나에게는 엄청난 공포였고 매일 밤마다 돌더미에 깔려 죽는 꿈을 꾸며 정말 힘든 나날을 보냈다.

지진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면서 나는 이때 귀국을 결심했다. 귀국직후 서울에서 지인들과 함게 동업을 시작했지만 때마침 터진 IMF로 인해 빚만 2천만원정도 남았다. 가진 것이 없게 되면서 내가 갈 곳은 고향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에서만 자란 가족들을 어렵게 설득해 고향인 강진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로 10년만에 귀향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순간에 돌아온 고향에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람이면서 나에게 힘이 되어 준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됐다. 바로 그분이 강진순복음좋은교회 문종명 목사님이다.

순복음좋은교회 문종명 목사
문 목사님은 나와 달리 강진이 고향이 아니라 충북 청원출신이다. 강진처럼 산과 들이 있는 농촌지역이다. 문 목사님은 그곳에서 2002년 교회 개척을 위해 강진을 찾았고 지금까지 강진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향에 막 돌아온 나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낚시업체의 미끼로 사용되는 생물을 팔았다. 목포의 한 수산업체에서 물건을 떼다가 팔았다. 5년동안 하다보니 종자돈이 생겼고 택배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이때 맞벌이를 해야했기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고민을 많이 했다. 이때 천주교를 믿었기에 강진성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우연히 딸의 친구 아빠였던 문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문 목사님은 마치 자신의 자녀인 것처럼 맞벌이로 바쁜 나 대신 부모님 역할을 해주셨다. 문 목사님이 아이들을 맡아주셨기에 우리 부부는 부담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때 기독교로 바꾸게 됐고 문 목사님이 있는 순복음좋은교회로 옮기게 됐다.

이때부터 나에게 문 목사님은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셨다. 내가 고민이 있거나 큰 결정을 해야 할때면 문 목사님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고 문목사님은 나와 함께 진심으로 고민해주시며 조언을 해주셨다.

그럴때마다 문 목사님은 나에게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다보면 꼭 좋은 시절이 올 것이다”고 위로해주셨고 “남을 바라볼때 편견을 버리고 대해야 한다”는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또 밤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며 잘되길 빌어주시기도 했다. 이 인연으로 딸은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일렉기타를 연주하며 봉사를 하고 있다. 현재도 학교에서 밴드부에 가입해 밴드활동도 하고 있다.

항상 문 목사님은 주위 사람들에게 인자하고 따뜻한 모습만 보여주셨고 신도들과 주변 지인들에게도 항상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고향에 내려와 많은 어려움을 겪은 나와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도 항상 걱정해주시고 기도를 해주셨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다.

또 나는 현재 강진읍에서 살다가 6년전부터는 성전면의 귀농인들이 모여살고 있는 강진달빛한옥마을에 살고 있다.

우연히 이 부근에 화물을 배달하기 위해 찾았다가 수려한 월출산과 푸른빛깔의 녹차밭을 보고 경치에 반해버렸다.

거처를 옮기고 싶다고 고민을 하던차 목사님에게도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에 한옥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는데 수중에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직접 측량도 하고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담을 쌓았다. 몸은 힘이 들었지만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에 살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계기였다.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서 10년이상 후회했다. 항상 후회속에 생활을 하다가 강진에 와서 문 목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종교도 바꿔서 교회를 다니게 됐다.

문 목사님과 만남을 갖게 된 이후부터는 우연인지 일이 잘 풀렸다. 요즘에는 문 목사님 덕분에 항상 삶이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문 목사님도 고향이 아닌 강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오셨는데 고생을 많이 하셨다. 초창기때에는 신도 수도 많지 않아 한달에 20여만원 남짓의 돈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항상 나와 가족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고 행복을 선물해주셨다.

지난해 강진사랑나눔회에서 주최한 사랑의 편지쓰기 행사에서 갑작스럽게 문 목사님의 최우수상 수상 소식을 전해듣게 됐다.

문 목사님이 직접 쓰신 편지를 읽어보며 눈물을 훔칠 정도로 나에겐 감동이었다. 감동적인 글을 쓴 문 목사님의 수상이 마치 나의 일처럼 기뻤다. 당연히 바쁜 일도 제쳐놓고 시상식때에도 참석해 문 목사님의 수상을 직접 축하해주었다.

지금까지는 목사님에게 나와 가족들은 받기만 한 것 같아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문 목사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그동안 마음속에 있었던 감사한 마음과 존경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면서도 너무 늦어서 죄송한 마음도 든다. 보답하는 차원에서 나의 딸이 교회 밴드부에서 재능기부 봉사를 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남은 2018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강진에서 계속 신도들에게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길 기원한다. 또 나와 우리 가족들과의 인연도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    <정리=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