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천 선생은 슬하에 5남 3녀를 두었는데 장남 성용(사진)씨가 강진에서 태어나 강진중앙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용씨가 중앙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중에서 몇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천재라고 입을 모은다.

성용씨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이듬해 귀국해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1970년 경제기획원장관 보좌관을 거쳐 1972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있던 중 금호실업(주) 부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금호실업 사장(1974),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1979)을 거쳐 1984년에는 창업주의 뒤를 이어 그룹회장에 취임했다.
 
1995년에는 회장 취임 당시 6900억 원이던 그룹 매출액을 4조원 규모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2005년 지병으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했다.
 
박성용 회장과 교류했던 김식 전 농림부장관은 “매달 만나는 사이였는데 1998년 초 몇 개월 보이지 않다 나타나더니 아시아나 비행기를 여러대 해외에 팔았다고 했다”며 “그 직후 IMF가 왔는데 금호는 당시 박성용 회장의 준비 때문에 IMF를 큰 탈 없이 보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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