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광주전남연구원장

반세기를 경영학 연구에 정진해 오면서 늘 한국적 경영학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살아왔는데, 이번에 `상남경영학자상`이라는 뜻깊은 상을 받고 보니 감회가 남다르기에 평소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경영학은 광복 이후 미국 경영학이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이전 일본 강점기에는 독일의 경영경제학이 대학에서 강의되었지만 학문적 의의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경영학의 양대 산맥인 독일 경영학과 미국 경영학이 시차를 두고 수입된 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 자본주의 그늘에서 성장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 경영학도 미국 학풍 일변도로 발전해 왔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영학자들을 중심으로 선진 경영 이론이나 기법이 앞다퉈 소개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 기업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우리 토양이나 문화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경제 규모가 커가고 한국 기업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적 경영학의 필요성은 날로 커져가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실사구시를 지향하면서 많은 저서들을 내놓았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를 살펴볼 때, 실학을 한국 경영학의 원류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입장이 필자를 포함한 몇몇 경영학자들의 생각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철학으로 연구를 해 오던 어느 날, 필자는 혜강 최한기 선생의 저서 `인정(人政)`을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인사관리 교재로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무려 1024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170년 전에 이미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인사평가의 척도를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랄 만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것도 모른 채 우리 체질에 맞지 않는 미국의 고과 기법을 가져다 적용하여 왔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선조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도 한국형 인사고과 기법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많은 역사적 문헌을 접하는 과정에서 학문 연구는 결코 그 역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터득하게 되었다.

일찍이 독일 문호 괴테는 말했다. "학문의 역사는 학문 그 자체"라고. 그러기에 경영학의 역사는 바로 경영학 그 자체로서 경영학의 정체성을 말해주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한국 경영학도 형성 과정에서 기업사, 기업가사 연구를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경영학은 통일신라시대에 활약했던 장보고가 청해진에서 해상무역왕으로 명성을 드높이는 시절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지중해 상권이 형성되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이탈리아 상인들의 어음과 복식부기가 경영학사에 큰 획을 그었듯이 말이다. 고려시대 전통상인으로 명성을 날린 개성상인 또한 송도부기를 만들어 활용하였기에, 한국형 복식부기로서 경영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남도에서 회자되고 있는 "북에는 송상(松商), 남에는 병상(兵商)"이라는 구절이 있다. 북쪽에는 개성상인, 남쪽에는 병영상인이 있다는 말이다. 강진 병영성이 축조된 지 600년이 넘은 터라 병영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병영상인은 조선시대 전라도 지역에서 이름을 날렸던 전통상인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병영상인을 발굴하고 학계에 보고하여 널리 알려지게 함으로써 필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한국경영사학회장을 맡아 의욕적인 연구사업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장수기업연구회 워크숍(workshop)을 통하여 장수기업의 DNA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벌써부터 우리 연구팀은 세계 최장수기업인 일본의 곤고구미 회사를 찾아가 보는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3월 7일자에 게재된 박성수원장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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