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현 / 강진아트홀 큐레이터

다산의 사랑(정찬주,봄마중)
다산의 사랑 (정찬주小說集, 봄마중)

우리시대의 역량 있는 중견작가 정찬주가 장편 연작소설 [다산의 사랑](봄마중)을 출간했다. 동아시아의 전통사상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실천한 점을 높이 사, 그분의 탄신 250주년을 맞아 유네스코가 루소, 헤르만 헤세, 드뷔시와 함께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다산선생을 다룬 작품인데, 이전의 여러 소설작품들과는 접근방식이 사뭇 다르다.

기실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서 다산은 위대한 사상가 혹은 그의 치세와 유배지에서 간난의 고통을 이겨낸 ‘위인’으로서의 관점에 충실히 다뤄졌다면 이 작품은 다산의 ‘인간적인 면’에 방점을 뒀다.

작품의 무대는 전편이 강진이다. 이 소설은 다산의 읍중제자 이청과 초당에서 수발을 들었던 홍임 모, 그리고 그의 딸 홍임이 18년 귀양살이에서 해배되어 마재로 돌아간 그를 만나러 송파나루에서 한강을 거슬러 소내나루로 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산의 생애 중 강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로 다룬 작품의 전편에는 펼쳐지는 이야기와 더불어 시각적 이미지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살아난다. 사의재와 황상, 이청 등 읍중제자들, 고성암 생활, 학림마을, 남포, 다산초당 등이 등장인물과 어울린 작품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선연하게 다가온다.

작품은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기보다 ‘있을 법 한 이야기’를 추론하고 유추해서 재구성한 말 그대로의 ‘넌픽션’이다. 따라서 그 미덕은 사실로서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이야기들을 ‘오감’의 영역으로 풀어헤쳐서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쉽고 평이한 ‘형상’의 방식으로 드러낸 점이다.

우리들 생각 한켠에서는 다산의 삶에서 홍임 모와 홍임의 존재를 끝없이 지우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의표는 그 지점으로부터 시작한다. 글 잘 쓰고 처세 바른 일속산방에서의 삶으로 잘 알려진 황상과 과도하게 왜곡되게 그려진 읍중제자 이청과의 시샘, 질투와 경쟁, ‘다신계’라고 알려진 어쩌면 너무 신화화 된 사람과 일화들의 추한 뒷이야기들이 모두 ‘맨살’을 드러낸다.

하여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원본/진실/사실’ 같은 것보다는 ‘재구성/변화/생성’ 같은 덕목들이 훨신 더 중시되는 이 즈음에 ‘스토리텔링’은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재현’을 뛰어넘어 ‘재구성’의 차원으로 높게 승화되어야 한다고.

백련사의 혜장스님, 대흥사 초의선사, 초당의 다신계 제자들, 황상과 이청, 그리고 홍임 모, 끝내 대흥사로 출가하는 홍임은 모두 강진 사람들의 전형으로, 가히 이 소설은 작가가 ‘강진사람들에게 바치는 연시’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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