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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사람]위성식 군의원편. 김정권 강진읍교회 원로장로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누구보다 지역발전 위해 앞장서오신 분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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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8  10: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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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식 군의원이 자신이 평소 존경하는 김정권 강진읍교회 원로장로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소짓고 있다.
1973년 광주금방 시작하며 첫 인연맺어
자주 가게에 들러 여러 가지 조언해주셔
강진군번영회장, 상록회장 등 사회단체 활동
투자유치, 내고향 주소갖기 운동 앞장서


나는 군동 평리에서 어렸을때 성장했다. 원래 태어난 곳은 이웃 지역인 장흥이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강진에서 성장했기에 사실상 강진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지역에서 졸업했고 이후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광주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후 21살되던 해인 1973년 다시 강진으로 돌아왔다.

강진에 돌아온 나는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바로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광주금방이다. 당시에는 현재 은혜꽃집이 있던 자리에 처음 금방을 열었고 이후 몇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현재 부지에 땅을 구입해 건물을 올려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 내가 장사를 하던 중앙로 일대에는 정미소가 있었고 현재 강진신협 자리에 교육청이 있었다. 7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터미널 주변 중앙로 일대에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장사를 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장사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현재 광주금방 자리 인근에는 상가가 많지 않았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때에는 현재 동성리 부근인 동광당 부근과 극장통이라 불리는 거리가 사실상 강진의 상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때에는 터미널도 현 위치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이때 나에게 도움을 크게 주신 분이 한 분 있다. 바로 나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분을 꼽고 싶다.

그 주인공은 바로 강진군번영회장을 역임했던 김정권 강진읍교회 원로장로님이다. 내가 김 장로님과 인연을 처음 맺게 된 계기와  시기는 세월이 흘러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내가 강진으로 돌아와 장사를 시작한 이후였던 것 같다. 김 장로님은 요즘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도 온화한 인상을 갖고 계셨고 다정다감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김정권 강진읍교회 원로장로
당시에 김 장로님은 시장 근처에서 강진혼수백화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장사를 하신지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약간 과장된 표현으로 강진읍 상점중에서 터주대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분이다.

내가 장사를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김 장로님을 찾아가거나 오고가며 만남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됐고 장사를 하면서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손님접대 방법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항상 김 장로님은 중앙로 부근을 지날 때면 가게에 들러서 나와 담소를 나누곤 하신다. 최근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자신의 농사와 나무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교회이야기까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실 나는 김 장로님을 만나기 전에는 불교를 믿었다. 부모님들도 절을 다니셨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럽게 절을 따라다니며 불교를 믿게 됐다. 그러던중 지난 2012년무렵 어느 날 김장로님이 가게를 방문하셔서 교회를 함께 다녀보자는 권유를 해주셨다.
 
김 장로님을 평소에 존경하고 믿어왔던 나였기에 장로님의 권유에 따라 불교에서 기독교로 바꿔 강진읍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현재 나는 집사로 활동중이다.

김 장로님과 함께 강진읍교회에 다니면서 지역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눈을 뜨게 됐다. 교회 신도들과 함께 여름철이면 군동 사랑의 집을 찾아 무성해진 잡초를 뽑고 풀베기를 해왔다.

또 김 장로님은 오랫동안 강진읍에서 상점을 운영해왔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공헌을 해왔다. 강진군번영회장으로 6년간 활동하면서 지역상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셨고 청주김씨 강진종친회장으로 6년, 강진상록회장 등 지역내 크고 작은 사회단체에서 회장으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오셨다.

최근에는 8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강진읍 남문마을 개발위원장을 맡아 여전히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항상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도 김 장로님의 뒤를 이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또 항상 상대방이 나이가 어리더라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존대말을 하며 상대방을 존중해주신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 자신도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가끔씩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김 장로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반성하게 된다.

특히 김 장로님은 강진군번영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당시에 다소 침체기에 있었던 강진지역 상권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강진군과 함께 노력을 많이 하셨다.

회원들과 함께 기업 유치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에서 투자유치 참여 캠페인을 추진하기도 했고 공공기관 유치를 위해서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노력하셨다.

김 장로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통계청과 건강보험공단 등 각종 기관들이 강진으로 이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 주소갖기 운동을 강진군과 함께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면서 한때 인구감소가 다소 주춤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이때보다 인구감소 문제가 더 심각한 상황이지만 당시에 누구 보다 앞장서서 주소 옮기기 운동을 펼친 덕분에 다소 인구감소가 주춤하기도 했으며 잠시였지만 인구가 늘어났던 해도 있었다.

최근에도 여전히 김 장로님은 지역과 마을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자신의 상점을 운영하고 나무와 농사를 지으시며 바쁘게 살아가고 계신다.

항상 옆에서 지켜보면 누구보다 아침일찍 일어나 농작물을 돌보고 후배들과 만날때에도 웃으며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이 때문에 후배들중에서 김 장로님을 존경하고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장로님의 인품과 근면, 성실함, 강한 추진력 등은 나 자신도 배우고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

나도 군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김 장로님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가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실천하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또 2018년 새해에는 김 장로님이 항상 건강하길 기원하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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