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정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멋의 소유자… 지역발전 위해 앞장

김명희 강진군의회 부의장이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던 김재정 향토축제추진위원장과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친정오빠가 몸담았던 일심회 모임으로 인연
부모님과도 친분이 두터워 자주 왕래
‘정치인의 꿈’이룰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 역할 
군지역발전협의회장, 향토축제추진위원장 맡아 활동


나는 강진에서도 산과 물이 아름다워 산세가 수려한 곳 중 하나인 칠량면 삼흥리 출신이다. 이 곳은 봄이면 실록이 우거진 녹음사이로 산새들의 지저귐과 싱그러움 속에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을 받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을 꼽는다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분을 꼽을 것이다. 바로 향토축제추진위원장인 김재정 회장님이다. 어렸을 때부터 뫼시던 사이였기에 평소에 사석에서 만나면 “오라버니”라고 부르곤 한다.

내가 회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에 회장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나의 친정 오빠와 일심회 라는 지역유지들로 구성된 모임을 함께 하고 계셨다. 당시에 나의 친정어머니는 몸이 약하셔서 누워 계시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면 누워 계신 어머니를 찾아 김재정 회장님을 비롯한 일심회 회원들이 문병을 오곤 했다. 문병을 올 때 마다 회장님은 그때마다 “문병 오는 것이 아니라 폐를 끼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회장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하셨다. 항상 우리 마을을 찾아오시면 마을 인근에 있는 저수지 둑 위에서 읍내에서 사온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친구들과 함께 나눠드시곤 했다. 사람을 좋아하셨기에 항상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허물없이 대해주셨고 나에게도 친정 오빠처럼 잘 대해주셨다.

지금은 많이 외소해지셨지만 그때 회장님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인물도 좋으셨고 체격도 준수하셨다. 체격이 좋았기에 양복이면 양복, 한복이면 한복이 잘 어울리셨고 전통한복 검정 두루마기를 자주 입으시며 거리에서 멋을 부리곤 하셨다. 어린 나이에 회장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 “빛이 난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멋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재정 향토축제추진위원장
회장님은 세상에 없는 멋쟁이요 인물 또한 뛰어나게 잘났고 넘치는 카리스마에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몰리는 리더십이 뛰어나셨다.

지역의 선후배들에게 정말 가족처럼 덧없이 아끼셨고 애향심이 남다른 가슴을 갖으신 분이셨다. 자신의 것을 어려운 후배들에게 베풀어주고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면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위엄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멋을 내면에 지니고 있어 회장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 사실은 아직도 변함없다.

회장님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다양한 직책을 도맡아 열심히 일하셨다. 그중 몇 개만 소개해보면 강진군지역발전협의회장, 재향군인회장, 강진군생활체육회장, 향토축제추진위원장, 장애인복지관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계신 모습이 자랑스럽다.

특히 지난해에는 ‘강진 방문의 해’라는 큰 행사가 치러졌는데 그중에서 중요한 자리인 향토축제추진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맡으셨다. 지역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펼쳐지면 축제장 곳곳을 다니며  준비가 부족한 부분을 실무자들에게 전달하고 축제 성공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따끔하게 지적해 시정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잘 해내셨다.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고 나 자신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와 해학과 위트로 좌중을 휘어잡는 분이시기도 하다. 내가 지금 강진군의회 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분도 바로 김재정 회장님이셨다.

어느 날 회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만나서 차나 한 잔 하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회장님은 나는 마음은 있어도 언감생심 뜻도 못 비추는데 “너 지금 뭐하고 있느냐? 지금 당장 출사표를 던지고 한번 도전해 보아라”고 하시며 후배들을 시켜 각 단체에 추천서를 받아 오도록 하셨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김명희가 부각될 수 있는 운동을 펼쳐 주시며 회장님은 내가 출마를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부분은 뒤에서 적극 지원해주셨다. 자신이 알고 계신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소개도 시켜주셨다. 한마디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셨던 것이다.

회장님은 내가 비례대표로 군의회에 입성하게 되니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시고 “잘하고 있지? 열심히 해” 하시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곤 하셨다. 회장님의 선택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더욱 신중을 기해 처신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회장님을 생각하면 우스운 일화가 생각난다. 내가 결혼을 하고 신혼 때로 기억된다. 그 시절엔 자동차가 귀한 시대였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회장님께서 자가용을 타고 지나가시다 내가 보이니 읍내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자동차에 내리면서 쑥스러운 마음으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2~3장을 차비로 내밀었다. 그때 회장님은 “이 노무 자식 좀 봐라이 어서 거두라”고 호통을 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혼자 피식 웃곤 했었던 고백을 지금 해 본다.

또 회장님은 날 만날 때 마다 친정아버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는 말씀을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주 해주셨다. 서로가 나누었던 따스한 정을 이야기 하시며 함께하신 막걸리 이야기 풍류를 즐기신 아버님의 호탕한 모습들을 회상 하며 인심이 넉넉하신 회장님을 더욱 따르게 된 이유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지인들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모양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회장님은 다양한 사회단체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해오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 자신도 뒤를 이어 함께 하게 됐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지역의 후배들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는 따뜻한 마음, 사회 생활하는 방법과 올바른 행동 등을 가르쳐주셨고 회장님의 가르침은 나의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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