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신안마을 조형종 이장, 90년대부터 꽃상여 제작

장례식장 활성화 이후 주문양 줄어, 섬 지역 위주 판매   

성전 신안마을 조형종 이장이 자신의 자택 창고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중 하나인 꽃상여를 제작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상여를 제작해온 조 이장은 최근 장례식장 문화가 정착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든 상여를 계속 제작하고 있다. 전국에서 제작하는 사람이 몇명 남지 않아 전국의 언론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예전부터 사람이 죽으면 화사한 꽃장식이 달린 상여를 메고 장례를 치렀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속에 장례식장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꽃상여는 점차 사라져 요즘은 TV나 축제장이나 체험장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것으로 변했다.

최근 관내 한 마을이장이 여전히 꽃상여를 제작해 전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주인공은 성전면 신안마을 이장 조형종(61)씨이다.

조 씨는 신안마을출신으로 타지에서 사업을 하다가 1998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왔다. 6년 전부터는 마을이장을 맡고 있다. 최근 조씨에게 전국의 언론에서 인터뷰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상여제작자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조 씨가 장의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무렵이었다. 당시에 군제대 후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장의사들에게 장의용품을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다.

장제사업의 경우 당시에 제고가 별로 남지 않는다는 점과 외상이 없어 결제가 잘 됐고 특수한 사업이다보니 경쟁업체도 많지 않아 해볼만한 사업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죽으면 장의사를 통해 장례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조 이장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등에 약 270여곳의 장의사들에게 용품을 납품했다. 이때부터 장의사들이 제작하는 꽃상여를 보고 관심을 가졌고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그러던중 1990년대 초반 무렵 지역농협에서 장제사업을 하는 붐이 일어났다.

이때 조 이장은 전라도 지역의 농협들에게 장의용품을 납품하게 됐다. 이때만 하더라도 농협 직원들은 꽃상여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장의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옆에서 지켜보면서 배웠던 기술을 토대로 꽃상여를 제작했다.

부족한 부분은 아는 장의사를 찾아가 1박2일, 2박3일동안 배우기도 했다. 이렇게 조 이장은  26개정도 지역농협에 장의용품을 납품하게 됐고 그중에는 꽃상여도 포함됐다.

상여에는 여러 가지 색상의 꽃장식이 포인트이다. 이 꽃들은 종이에 물감으로 물을 들여 꽃모양으로 장식을 하는 것인데 보통 전지가 사용된다. 꽃장식의 크기에 따라 종이의 크기가 달라지는데 보통 가장 큰 꽃장식은 2절 전지가 사용되고 4절, 8절, 16절 전지까지 사용된다.

일단 전지를 직사각형모양으로 번갈아가면서 접어서 마치 부채모양처럼 만든다. 이렇게 접어진 상태에서 물감 물을 들게 된다.

이때 물감에 알코올을 섞어서 제작하는데 보통 흰색, 붉은색 등 6가지 색깔이 사용된다. 물을 들이고 건조가 완료되면 부채모양으로 접었던 것을 펼치면 꽃장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꽃상여가 제작되지만 기독교 신자의 경우 꽃장식 대신 하얀색 꽃장식과 기독교를 상징위주로 꽃상여를 제작한다.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꽃상여에 비해 차분하다는 느낌을 준다.

꽃상여와 함께 당시에는 수의도 납품하기도 했다. 수의의 경우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점이 있었다.

전라도 지역에는 상복에 삼베와 광목, 명주 등을 함께 사용했고 두루마기를 걸치는 데 반해 경상도 지역은 거의 대부분이 명주로만 만들어진 수의를 입고 두루마기가 아닌 도포를 걸쳤다. 이러한 점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깨우친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1992년도부터 지역농협들 위주로 꽃상여를 제작해 납품해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여를 찾는 사람은 한달에 많아야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주로 육지에서는 주문이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 섬지역에서 주문이 많은 편이다. 이에 최근에도 조 씨는 청산도와 소안도 등 완도 주변 섬지역과 보길도, 임자도와 멀게는 제주도까지 꽃상여를 주문만 하면 직접 찾아가는 배달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직접 배달을 하다보니 조씨는 항상 원거리 여행을 할 수가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대기상태인 것이다.

요즘에는 세월이 흘러 익숙해졌고 대부분 상여를 제작할 물건들이 완비돼 있기 때문에 길어야 2~3일이면 만들 수 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요즘에는 장례식장을 찾다보니 꽃상여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렵다.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자신이 나이들고 몸이 아프기 전까지는 상여제작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

조형종 이장은 “상여가 돈이 되지는 않지만 마지막 가시는 분들에게 선물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고객 1명이라도 있을 때까지는 상여를 계속 제작할 생각”이라며 “한가지 걱정이라면 내 뒤를 이어 상여를 제작할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것과 맥을 이어자길 바라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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