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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사람]한상춘 전 옴천면장편.중학교 시절 은사 박태일 선생님“집안형편이 어렵다고 좌절하지 말고 노력하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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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1  1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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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 전 옴천면장이 강진라이온스클럽 회관에서 중학교 3학년 시절 자신의 담임이었던 박태일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도암중학교 3학년 담임 교사로 인연
어려운 가정형편에 고민할 때 따뜻한 관심
수차례 찾아와 진학 포기하려는 부모님 설득
시골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심어줘


나는 도암의 중심마을이자 역사적으로 강진에서 살기좋은 마을중 하나로 유명했던 항촌마을 출신이다. 학교도 도암초와 도암중학교를 거쳐 강진농고를 졸업했으며 지금까지 살면서 도암에서 살아왔다.
 
1985년 지방직 7급 공채에 합격해 강진군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난달 옴천면장으로 퇴임할때까지 31년간 군청 공직자로 근무해왔다. 옴천면장으로 근무할때도 도암에서 출퇴근 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공직생활을 시작해 무사히 명예로운 퇴임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중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던 박태일 선생님이 생각난다.

박태일 선생님은 내가 도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암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나게 됐다. 당시에 박 선생님은 엄한 인상으로 무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추억이 생각난다. 익숙한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중학교에 입학해 낯설은 상황에서 무서운 인상의 선생님을 만나게 돼 약간 긴장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나는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집안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나는 항상 논과 밭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만 했다. 농번기가 끝나고 나면 친구들은 얼굴이 그대로지만 나는 얼굴과 팔과 다리가 새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들판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봄의 강한 햇볕에 오랫동안 노출된 탓인지 농번기가 끝나고 나면 피부에서 허물이 벗겨질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기 창피했다.

어렵게 중학교에 진학하긴 했지만 3학년이 되면서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시기가 됐다. 나는 어려운 집안형편탓에 광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지만 어려운 부모님을 보면서 꿈을 접어야만 했다.

나의 이러한 고민을 알고 계셨던 박 선생님은 항상 격려의 말을 해주시며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고 하는 나와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정성을 쏟기도 하셨다. 학교에서 나의 집까지는 약 3㎞이상 떨어져 있는데 이 거리를 박 선생님은 당시에 차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나의 집을 수차례 오가며 부모님을 만나셨다.

박 선생님은 부모님에게 “우리 상춘이는 꼭 공부를 가르쳐야 합니다. 공부잘하는 상춘이를 왜 고등학교에 안보내려고 하십니까”라고 말씀하시며 진학을 적극 권유했다.  

당시에 나는 공부도 곧 잘 해서 상위권이었다. 이같은 선생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진농고의 응시기간이 지나버리는 바람에 입학원서를 내지 못했다.
 
선생님의 간절한 바람때문이었는지 당시에 강진농고가 때마침 학생수 정원을 채우 지 못하고 미달되면서 추가모집을 통해 나는 무사히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바로 이 고등학교 진학이 나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최근 들어서 가끔씩 당시에 내가 집안형편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더라면 공직생활을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평범하게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박 선생님은 학교내에서도 나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다. 항상 내 옆을 자주 오가며 내가 쓰는 영어단어 하나에도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를 지켜봐주셨다. 내가 틀린답을 적을때면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를 지적해주시면서 “공부 더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시며 격려를 해주셨다.

또 어려운 형편 때문에 참고서를 살수가 없었는데 선생님은 자신의 사비로 참고서를 구입해 나에게 선물해주시며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덕담을 해주셨다.

외모는 다소 무서운 인상이셨지만 직접 담임선생님으로서 만난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선생님의 성함과 얼굴, 하셨던 말씀이 다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선생님은 항상 나뿐만 아니라 학교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갖지말고 살아라. 시골출신이지만  실력과 재능이 떨어진다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시골에 살고 있지만 도시에 비해 뒤쳐지더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면 도시 아이들 못지않게 잘해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심어주셨고 미리 겁먹고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나는 선생님의 이 말을 아직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의 좌우명처럼 되새기고 있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무엇이든지 누구보다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1985년에 7급 공채 시험에 합격해 강진군청 공직자로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공직생활을 하는 와중에서도 형편 때문에 못했던 공부를 계속해 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전남대 산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또 농군인 강진의 농업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 공중딸기재배기술 전남최초 도입, 원예전문단지 육성 등 다양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지역에서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모두 선생님이 격려와 용기를 복돋워주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졸업후에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죄송할 따름이다. 죽을때까지 박태일 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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