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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 3代 가지 못한다고 하던데… 왜 그럴까대표적 자수성가 강진버스터미널 창업주 故 김영회장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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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1  11: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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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매표수입 감소, 경영난 … 2세 경영 끝내 좌초

   
강진읍의 중심상권에 있는 강진버스터미널은 자수성가 사업가인 고 김영회장이 운영하다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 받았으나 적자가 늘고 부채가 쌓이면서 경매에 넘어가 지난해 말 주인이 바뀌었다. 강진버스터미널의 좌초는 강진의 부자들이 3대를 가지 못한다는 또 다른 종적을 남겨 아쉬움을 주었다.
최근 몇 개월간 강진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강진의 큰 사업가로 통했던 한 집안이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진버스터미널 이야기다.

버스터미널이 경매로 넘어가 버렸고, 오랫동안 살아왔던 읍내 극장통 한옥은 물론 보은산의 임야까지 경매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갔다. 몇일 전에는 보은산 자락에 있던 선산까지 역시 경매로 넘어갔다.

강진버스터미널을 소유하고 있던 집안은 거의 모든 것을 잃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인생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나는 경우가 있을까”하며 허탈해 하고 있다.

강진버스터미널은 고 김영 사장(2012년 92세로 별세)이 평생 이룩한 사업이었다. 그는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 였다. 1960년대 초반 강진읍 극장통 사거리 모란다방앞 자리에서 광주여객 소장을 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훗날 강진 운수업계를 평정했다.

강진의 인구가 가장 많을 때가 1968년으로 12만명대였다. 60, 70년대 인구의 황금기때 운수업계를 이끌었다. 터미널 주변에 돈이 굴러 다니던 시절이다.

그는 50년대 말에는 2, 3대 읍의원에 당선돼 정치활동을 했다. 이어 강진의용소방대장을 15년을 했고, 번영회장은 12년을 했다. 또 군민의날 집행위원장을 다섯번이나 맡았다. 이같은 활발한 활동력 덕분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군민의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자동차 보급이 늘면서 터미널 매표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 90년대 후반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어려움은 깊어만 갔다.

아들이 사업을 이어받았지만 인구감소에 따른 터미널 매표수익 감소는 막을수 없었다. 임대사업을 통해 손해를 벌충해 보기 위해 터미널 주변에 큰 건물을 지었다.

사업경험이 일천했던 아들은 밀려오는 쓰나미를 막아내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고, 사채를 얻어 썼다. 그것들을 갚지 못했다. 터미널 건물을 비롯한 모든 재산에 압류가 들어왔다.
 
결국 관련 재산들이 모두 경매에 넘어가 다른 사람들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게 아주 최근 일이다. 고 김영 회장의 부친은 평화여관이란 숙박업을 했다. 극장 바로 위쪽에 있던 여관이었다. 이번 경매때 그 여관 한옥도 넘어갔다.

강진의 어르신들은 터미널 집안의 붕괴를 아쉬워 한다. 강진읍의 한 주민은 “부자 삼대 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고 김영회장님은 생전에 봉사활동을 많이 했던 분이다.
 
후대에 사업이 그렇게 돼서 안됐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그 집안이 1998년까지  강진군청앞 지금의 영랑생가 대형주차장 자리에 살았다.

당시 군청이 주자창을 만들 수 있도록 양보를 하고 이사를 했을 정도로 지역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회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98년경 강진군에서 터미널을 지금의 동화주유소 주변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때 옮겼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 않느냐”는 진단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경매로 적지 않은 세입자들의 패해자가 발생하면서 80년대 금호고속의 터미널 매입 시도가 좌절됐던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터미널 집안의 사례는 주민들에게 만감을 교차하게 하고 있다. 강진은 전남에서 부자들이 많은 곳이었지만 그 부자가 2대, 3대를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서울까지 가려면 그 사람의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땅이 많았던 김충식 선생은 6.25 직후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전 재산이 분해됐다.

해방 직후 진행된 농지개혁이 큰 원인이었지만 일부 후손들의 무질서한 재산관리가 더 큰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다른 지주들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조선후기부터 강진의 꽤 큰 부자로 통했던 비장네란 집안은 고래등 같은 한옥이 경기도 남양주시로 팔려가고 그의 후손들도 대부분 강진을 떠났다.

근래들어 강진에서는 건설업이나 도정업 등을 하면서 부자 그룹에 편입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대부분 그의 자식대에서 셔터를 내리는 운명을 걸었다. 강진에는 뿌리 깊은 부자가 없는 셈이다.

주민들은 “지역사회에서 부자들의 부침 과정을 지켜 보며 정말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며 “강진에서도 3대, 4대 가는 기업이나 상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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