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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사람]김영모 명성공업사 대표편. 고 김재천 강진공업사 전무“한 우물만 파다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가치를 알아줄 날이 온다”
오기안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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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3  16: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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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모 명성공업사 대표가 젊은 시절 강진공업사에서 함께 근무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던 김재천 전 전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진공업사 입사하며 처음 만나
인생선배로서 살아가는 방법 조언
신전 영동농장까지 아들 출산소식 전해줘
항상 가족처럼 따뜻하게 위로와 격려


나는 강진읍 서성리 산업단지내에서 명성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정비업에서 종사한지도 벌써 40년이 넘어 많은 단골고객들도 생겨났다. 내가 자동차 정비에 뛰어들게 된 것은 어려운 가정형편탓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19살에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돈을 벌어야 했고 나는 당시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던 강진공업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때가 1975년이었다. 이때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4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세월동안 아직도 자동차 정비업을 하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강진공업사에서 함께 일을 했던 김재천 전무님이다. 나보다 5년뒤인 1980년경 강진공업사에서 일을 시작하셨고 당시에 공업사 전무로 근무를 하셨다.

김 전무님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조선대를 졸업하셨고 군동농협에서 일을 하다가 퇴직하셨던 분이셨다. 나에게는 아버지뻘이셨던 분이셨다.

강진공업사에 막 들어오셨던 김 전무님은 온화한 인상을 갖고 계셨고 인상처럼 인자한 분이셨다. 주로 공업사의 영업과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자동차 정비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인생 선배로서 나이가 어렸던 나에게 친아버지처럼 잘 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나는 자동차 정비업을 하면서 그만 둬야하나 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했다. 그럴때마다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김 전무님은 항상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셨고 인생 선배로서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점을 예로 들며 조언도 자주 해주셨다.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은 일이 힘들지만 성실하고 근면하게 열심히 살고 노력해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다.

또 한 우물만 파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람들이 알아줄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려주시면서 나에게 이왕 시작한 자동차 정비업이니 힘들겠지만 열심히 노력해라는 말을 해주셨다.

당시에 나는 김 전무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4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김 전무님의 말씀이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19살부터 지금까지 자동차 정비라는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면서 노력하고 공부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강진 군민들에게 자동차 정비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알아주게 됐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만약 내가 김 전무님을 강진공업사에서 만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막 강진공업사에서 일하던 때만 하더라도 강진에서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군 전체에 자동차가 200여대 정도로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만큼 차가 귀했고 소중한 재산이었기에 당시에는 출장 정비서비스도 많이 다녔다. 어느 날 하루는 내가 신전면 영동농장까지 출장을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 렉카 차를 타고 신전 영동농장 인근까지 가서 수문 작업을 진행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차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자동차 정비외에 다른 일도 자주 맡아 하곤 했다. 이때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김 전무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강진읍에서 영동농장까지 먼 거리를 달려오셨다.

달려오셔서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시며 아들을 낳았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주셨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아내가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먼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오셨던 것이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김 전무님은 항상 다정다감하고 후배들과 동생들을 가족처럼 잘 챙겨주시는 성격이셨다. 그때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김 전무님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강진공업사에서 자동차 정비 관련 일을 배운 나는 가족이 생기면서 1988년 독립을 하게 됐다. 강진읍 목리사거리 인근에서 카센터를 운영했고 이후 성전면의 한 공업사를 인수해 명성공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가게를 옮겨야했고 오늘날 강진읍 공업단지내로 이사해 오늘날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내가 독립하면서 김 전무님을 자주 뵙지 못하게 됐고 그로부터 몇 년후 건강이 좋지 않아 김 전무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소식을 들은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점이 생각나 아직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40년이상 자동차 정비업을 해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바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열심히 살고 노력하자”라는 점이다. 이는 김 전무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중 하나였다.

자동차 정비라는 분야가 매년 새로운 자동차가 출시되고 최신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안주하는 순간 생명이 끝난다. 아직도 나는 새로나오는 자동차들의 설계도와 부품 등을 공부하고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또 먹고살기 위해 일만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을 보답하는 차원에서 여러 봉사단체 활동도 해오고 있다. 강진로타리클럽은 벌써 20년 넘게 활동하며 지역내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하고 있고 전문의용소방대장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또 강진군기독교 남신도회장도 맡아 활동한 적도 있다. 이처럼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자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지역사회 봉사에도 동참하고 있다.

이처럼 내가 항상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자동차정비라는 분야에 매진할 수 있게 된 데는 모두 김 전무님의 공이 크다. 명성공업사를 운영하는 그날까지는 김 전무님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하늘에 계신 김재천 전무님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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