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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역사향기] 김억추장군 4금강사에 함께 모신 김억추· 이순신장군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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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31  10: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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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 영파리 금강사 옆에는 수백년된 소나무가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어 금강사의 분위기를 한층 엄숙하게 한다.
의미깊은 역사적 화해 상징 
이순신장군은 국가사업으로 ‘성웅’
김억추장군 본격적인 조명 있어야

현무공 김억추장군은 1618년 1월 23일 7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1577년 무관이 되어 관직을 시작한 후 임진왜란이란 역사상 유례없는 변란을 겪었던 강진 출신의 장수는 그렇게 조용히 고인이 됐다. 후손들은 1781년에 강진읍 영파리에 금강사를 세우고 김억추장군과 이순신장군을 함께 모셨다.

금강사에 김억추와 이순신을 함께 모신 것은 김억추장군이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을 도와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안내간판에는 설명하고 있다. 금강사 앞에는 두사람의 동상을 나란히 세워 이순신 못지 않은 김억추의 임진왜란 공훈을 느끼게 하고 있다 .

두 장군이 한 사당에 모셔지고 나란히 동상까지 세운 것은 역사적으로 싱징하는 의미가 크다. 전술했듯이 이순신은 김억추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하지 않았다. 김억추는 임진왜란동안 각종 상소 때문에 파직되거나 강등된 경우가 다섯차례가 넘었다. 백의종군도 두 번이나 했다.

   
김억추 장군의 동상을 뒤에서 보면 활을 힘차게 쥐고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중에서 뚜렷하게 과오가 인정되는 것은 1592년 함경남도 갑산전투에서 패배해 삭직된 정도이다. 나머지는 ‘사람됨됨이니’, ‘우둔하느니’ 하는 요즘 시각으로 봐도 애매한 내용의 상소 때문에 피해를 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순신도 갖가지 음해성 상소 때문에 두 번이나 관직을 빼앗겼다. 승진을 하고도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된 경우도 여러차례였다. 1587년(선조 20)에는 두만강 인근에서 근무할 때 여진족에 패했다는 이유 때문에 파직됐다. 첫 번째 백의종군이다. 두번째 백의종군은 1597년(선조 30) 1월이었다.

그는 왜군을 공격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죽음 직전에 이르는 혹독한 신문을 받은 끝에 4월 1일 백의종군 명령을 받고 풀려났다.

두 사람은 이렇듯 임진왜란이란 난국에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면서도 주변의 모함과 잘못된 평가로 파직당하고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하는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훗날 사뭇 다른 평가를 받는다. 이순신장군은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사업으로 민족의 영웅으로 빛났지만 김억추장군은 그에 훨씬 못미쳤다.

이순신장군이 각종 음해와 중상모략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평가됐지만, 김억추장군은 그런기회가 없었다. 후세 사가들도 김억추장군을 눈여겨 보지 않았다. 때론 왜곡되게 장군을 바라보았다.
 
춘원 이광수가 1932년에 발표한 ‘소설 이순신’에는 다음과 같은 묘사가 나온다. ‘전라우수사가 되어 내려온 김억추는 아직 30내외의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하고 철없는 인물로...’. 전라우수사로 부임한 김억추의 나이를 30세 내외로 묘사한 것인데, 당시 김억추장군의 나이는 50세였다. 이런식으로 후세들의 기록들이 왜곡된 면이 많다.

이런 역사를 극복하고 두 장군이 금강사에 함께 모셔지고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역사의 화해와 용서를 상징성 있게 보여주고 있다. 두 장군은 금강사 앞에서 평온하다. 음해도 받지 않고, 중상모략도 당하지 않으며 오직 후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김억추장군을 역사의 무대로 불러내서 이순신장군에 못지 않은 조명과 평가를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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