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통된 장보고대교가 옛 강진현의 역사를 다시 잇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史實)이다. 굳이 장보고 대교에 세워진 비석속에 있는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교량, 역사와 이야기를 잇다’라는 문구가 아니더라도 장보고대교가 강진~고금~신지를 잇는 것은 지리적 기능만으로도 옛 역사를 잇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1896년까지 강진과 완도의 동부지역은 강진현이란 이름으로 한 행정구역이었다. 완도의 동쪽 섬, 그러니까 완도읍, 고금, 약산, 신지, 청산도 등이 강진현에 속했다. 강진현에는 마도진⋅가리포진⋅고금진⋅청산진⋅신지진 등의 수군진이 설치되어 있었고, 강진현에 속한 완도,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등은 많은 인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 수군진의 군인과 도서의 주민은 물론이고, 멀리 제주도에까지 각종 물자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창구였던 강진은 상업이 융성한 곳이었다. 각종 식재료에서부터 군수품, 의약재료까지 이 일대에서 유통된 물자가 풍부하게 넘쳐났다.

그러다가 1896년 행정구역 개편때 완도지역이 독립군이 된다. 그 역사 속에 이도재란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는 지금의 강진과도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강진읍에서 가장 큰 한옥중 비장네란 집이 있었다. 비장이란 지금의 도지사 비서실장 직책이다. 강진에서 조선말 비장이 탄생했던 것은 이도재란 사람 때문이었다.

이도재가 신지도에서 9년여의 유배생활을 하다 해배되어 한양으로 올라갈 때 강진사람 김제진이 8패교자를 내주어 긴급 이송을해 주었다. 이도재는 전라감찰사가 되었다. 임명직후 강진에서 계장급 정도로 근무하던 김제진을 불러올려 전라감찰사 비서실장을 시켰다.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장보고대교가 강진현의 역사를 잇는 이야기는 이것 외에도 많다. 그런 역사를 지금부터 잘 되새겨서 두 지역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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