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 빅터차는 합리적인 사람… 주한미국대사 부임하면 잘 할 것”

군동 출신 빅터차 부친 한국인 며느리 원해
집안끼리 중매해서 두 사람 결혼에 성공


김식 전 장관이 13일 오전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식(86) 전 농림부장관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 전장관은 지금도 두어달에 한번씩 고향에 온다고 했다. 2년 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건강은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이 좋아 보였다.
 
김식 전 장관이 다시 관심을 받는 것은 사위인 빅터차가 조만간 주한미대사로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터차는 군동 출신 차종채선생의 조카 손자이다. 강진의 근대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빅터차는 내년초에 주한미대사로 부임할 것으로 보인다.

-사위분이 언제쯤 한국대사로 옵니까.
미국에서는 주요국 대사로 보낼 사람을 임명할 때 6개월 이상 조사와 검증을 한다고 합니다. 검증을 받고 있겠이지요. 얼마전에는 저도 CIA 한국지사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받아갔습니다. 검증을 본인은 물론 본가, 처가까지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압니다. 조만간 빅터(그는 사위를 빅터라고 불렀다)가 올 것으로 봅니다.

-빅터차는 어떤 사람인가요.
컬럼비아대학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지요. 조지타운대 교수로 재직중이구요. 성격이 차분하고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주한미대사 자질로 보자면 미국과 영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세계를 보는 넓은 안목을 가졌기 때문에 무난히 직책을 수행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에 사는 강진 향우 2세를 사위로 삼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웃음)... 그러니까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서울에서 공부를 하던 지방 학생들이 미국으로 이민겸 유학을 많이 떠났습니다. 그중에 강진 군동면 호계리 출신 차문영씨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차종채 선생의 조카이지요. 차문영선생은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아이도 낳았는데 빅터차가 장남입니다. 빅터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했는데 마침 저의 딸도 영국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 연예 결혼이었군요. 유학하던 사람들끼리 만나 연애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아니요. 빅터와 우리 딸의 결혼은 철저히 두 집안간 중매결혼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사돈이 된 차문영선생은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했지만 장남인 빅터가 외국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무척 걱정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태어나기는 미국에서 했지만 한국여자와 결혼하기를 소원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한번은 차선생이 귀국해서 저와 연락이 닿아서 서울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그런 고민을 털어놓은 거예요. 아들이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꼭 한국여자와 결혼하길 바란다구요. 그래서 제가 대뜸 내 딸이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을 한번 만나게 해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냥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 다음이 더 궁금합니다. 그 시절에 유학까지 했던 젊은이들이 고향 부모님 끼리 약속에 따라 결혼했을리는 없겠지요(웃음).
얼마후에 두 사람이 맞선 비슷하게 만났는데 3년후 결혼하겠다고 부모님들께 큰절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결혼이 성사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효자 효녀라고 할 수 있지요(웃음). 처음에는 저의 처가 결혼을 반대하기도 했지요. 외동딸을 미국으로 보내는게 아쉬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지금은 교통이 좋아 미국도 하루 생활권이니 아무 문제없다고 설득해서 결국 결혼이 성사됐습니다. 빅터 부부가 아들 둘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빅터차는 트림프 행정부 주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한반도 전문가이면서 대북문제에 있어 강경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저도 빅터차가 대북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든가, 필요하면 선제공격도 필요하다는 신문 기고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빅터는 미정부를 대표해 우리나라에 부임하는 이상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랍입니다. 다만 빅터가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단호한 입장을 가졌다는 것을 예전부터 많이 느꼈습니다. 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주의지요. 그래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지금 전쟁을 두려워 하지 말고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서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한다고 자주 말하곤 했습니다.

-북핵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대화를 통해 해결하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북핵 해결에 필요하다면 적극적인 군사대응도 해야된다는 빅터의 의견에는 동감한 바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의 최대 목표는 정권유지입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정교하게 선제 공격하면 북한이 전면적인 보복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게 미국 핵심권력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정권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전면전은 북한의 정권 전복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구도 때문에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선제공격하면 핵능력만 파괴되고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선제공격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예전에 군인(육군소장 전역)으로서 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군인으로서 살았지만 전투 병과에서 일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소위때부터 군수지원 일을 했습니다. 월남전에 파병갔을 때도 군수품을 지원하는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보급병과는 소장 이상 진급하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역하려하는데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저와 인연이 닿았던 것이지요. 정치를 하면서도 저는 항상 나서지 않고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일을 했습니다.  

 -빅터차가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하면 여러 가지 조언을 하실 계획입니까.
“예전에는 빅터를 만나면 여러 가지 토론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을 대표해서 한국에 부임해온 사람인 만큼 스스로 판단해서 잘 하도록 지켜만 봐야지요. 매우 합리적이고 조용한 사람인 만큼 미국의 국익도 생각하겠지만 한국의 여러 가지 상황을 잘 감안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리라 믿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 하신다면
나름대로 개혁을 하고 있어서 국민여론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하고 있는 적폐청산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돼요. 영국의 수상 처칠이 전쟁과 정치는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전쟁은 상대방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막고 전멸시키는 것이라면, 정치는 상대방에게 도망갈 퇴로를 열어주고 공격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지금하는 적폐청산의 방식은 전쟁을 연상하게 됩니다. 이런 형태는 훗날 또다른 보복을 불러올 가능성이 많지요. 그게 걱정입니다. 정치를 해야지요.

- 고향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집사람이 떠난지 5년이 되어갑니다. 처음에는 세월이 지나면 차츰 잊혀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도 집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움과 아쉬움이 새록새록 돋아나 날마다 피어난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정말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부부간에 잘 지내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부인은 정말 귀한 사람입니다. 지금 옆에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나중에 저처럼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 없어요. 

-빅터차가 부임하면 언제 고향에 한번 함께 오시죠.
빅터가 그동안 강진에 몇차례 다녀 갔습니다. 선산에 가서 인사도 드렸구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자신의 뿌리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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