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순/전남지방행정동우회장

24년 전(1993년) 강진군 재임 때 강진군 도암면의 추곡수매장에서 말을 하지 못한 탓(농아장애인)으로 새벽부터 벼 21가마를 공판장에 내놓고 검사요원과 의사소통이 되지 못해 검사를 받지 못한 농업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사자인 농아자 장애 농업인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몇 가마를 가지고 왔느냐고 수기로 표기하여 물었더니 손바닥에 21가마를 가지고 나왔다면서 손짓으로 쌓아둔 벼가마를 가리켜주었다.

나는 곧바로 검사 절차를 무시하고 직권남용을 해가면서 현장검사요원(농산물검사소 직원)의 등급 판정기를 가로채 농아자가 가지고 온 벼 21가마 모두 1등급의 판정을 해 주었더니 땡땡 얼어붙었던 장애인 얼굴이 환한 웃음을 짓는 밝은 모습으로 변함을 보면서 다소 아픈 마음이 가라앉았다.

사무실에 귀청하자마자 읍면장을 통해 관내에 농아자 실태를 조사토록 했더니 무려 70명으로 파악되어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특수시책으로 수화교육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관내 성전면에 소재한 호남 영명학교(나종학 교장)의 도움을 받아 군청과 읍면 민원창구에 근무한 사회복지사 공무원과 함께 매주 2회씩 3개월간 영명학교 정동인 교사의 전담으로 수화교육을 시행하게 되었다.

교육대상자는 대부분 농촌에서 고용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의 허락 없이는 교육에 참석하기 어려운 처지로 결석할 수밖에 없어 출석률이 저조하여 읍면장을 통해 고용주들에게 이해를 구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또한 군행정책임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음료수 등 간식 준비를 하고 자주 교육장을 찾아 위로와 격려를 했었다.

한편 어느 농아자 아버지와 함께 교육장을 찾은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수화교육 선생님을 따라 아버님 손가락을 펴 주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이 뭉클했다.

그 후 교육을 이수한 담당 공무원이나 농아자 장애인 모두는 주민소통은 물론 읍면 민원 창구(보건 진료소 포함) 방문 시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함을 볼 때 사랑의 수화교육이 소외되고 그늘진 우리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전국 최초의 수화교육 성과의 보람이 아닌가 하고 흐뭇한 보람을 가진 바 있었다.

매월 정기적으로 국토대청결운동을 실시하는 날에는 교육을 이수한 농아자들이 장화 신고 삽자루 둘러메고 가장 먼저 작업장으로 참여, 봉사활동 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2012년 1월 한국농어촌공사 재임 때 나주시 삼영동에 소재한 사회복지시설인 ‘계산원’을 방문하여 위문공연 및 배식 등 봉사활동을 하는 기회를 가졌는바 뜻밖에도 강진군 재임 때 장애인의 수화교육에 큰 도움을 주셨던 ‘나종학’ 영명학교장께서 정년퇴직하시고 계산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어 깜짝 놀랐었다.

비좁은 수용시설에서의 위문공연을 하는데 마음껏 뛰놀지 못한 원생들을 보면서 매우 가슴이 아팠었다. 이들 원생들에게 다소 도움을 주기 위해 곧바로 한국농어촌공사와 복지시설인 계산원과의 시설을 돕는 지원 협약을 맺기도 했다.

복지시설인 계산원에서 부지를 확보하면 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유능한 기술인력으로 설계와 시공을 맡아 대강당을 지어주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복지 시설 측의 재정사정으로 부지를 마련하지 못함으로 협약사항이 이행되지 못한 아쉬움을 갖지만 계속해 시설 위문 등 지원을 아끼지 아니했다.

위문공연 당일 우연하게도 우리 행정동우회 고문이신 전석홍 시인(22대 전남도지사)께서도 자리함께 하셔서 원생들의 뛰노는 모습을 보고 느끼신 바를 담은 ‘오늘도 샘물 따스히 넘쳐흐른다’ 시를 남기시기도 했다.

오늘도 샘물 따스히 넘쳐흐른다

숲의 바다 외딴섬 이층 마루에
몸과 마음 가누기 힘든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하다
온몸으로 두들겨 대는 꽹과리, 북, 징 소리가
구성진 가락으로 흘러넘치며
혈관 속 깊이 잠든 신명을 일깨운다
마룻바닥 가득 둘러앉은 새싹 눈망울들
어깻죽지 저절로 들썩들썩
손버들개지 하늘을 흔들어 댄다
어느 아인 ‘그만이라’ 엄지 치켜 내밀고

순간 막힌 가슴들 강물 되어 서로 이어지고
갈증 난 사랑의 물길 트여 콸콸 넘쳐흐른다

오늘은 후원사 지원협약 맺는 날
원장과 후원사 대표 어울려
온기를 불어넣는 협약서에 서명하고
서로 잡은 손을 치켜 흔들어 댈 적
꽹과리, 북, 징 부딪쳐 울리는 함성
봉함된 손뼉 한꺼번에 우렛소리로 터지며
내 가슴 내 혼을 뒤흔든다

겨울 강추위가 봄 시냇물로 녹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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