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강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네

구석기,청동기, 삼국시대 유물 다양하게 발견
바다인접 지리적 조건 활발한 해양교류 이뤄
 

<강진일보>는 강진의 대표축제이면서 전국의 축제인 청자축제를 맞아 국립광주박물관과 강진군이 공동기획해 진행중인 ‘남도문화전Ⅲ- 강진전’을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9월 2일까지 열리고 있는 강진전은 그동안 알려진 강진의 역사에 더해서 새롭게 소개된 내용이 많습니다. 강진전은 강진의 역사를 정립해 보고, 미래의 강진을 설계할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1.구석기· 신석기 시대
 구석기시대에는 강 주변을 주요 생활무대로 하여 뗀석기를 사용하여 식량을 채집하거나 사   냥을 하였다. 강진에서는 마한문화연구원의 지표조사를 통해 칠량면 흥학리 중흥마을에서 구석기 유물산포지가 확인됐으며 긁개 한점이 수습되었다.
 강진에서는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반면 아직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강진과 인접   한 장흥군 유치면 오복리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된 점으로 미뤄 앞으로 탐진강 하류에   해당되는 강진에서도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2.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인구가 증가하고 집단간에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사회는 다변화되고 대규모의 마을로 확대되었다.

 -호산유적
  강진~도암간도로확장공사로 인해 2001년 조선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됐으    며 강진읍 학명리 호산유물산포지, 계라리 양유동유물산포지 등이 발견됐다. 저습지유구가 확인된 호산유적은 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4년 4월부터 8월까지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도랑유구 내부에서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구순각목문토기와 무문토기, 반달돌칼, 화살촉등이 출토됐다.    
 
 -양유동유적
  전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8년 5월부터 9월까지 발굴조사를 한 곳이다. 도암 계라리 옛 북초등학교앞 공동묘지 부근이다.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장병형주거지 1기가 삼국시대 주거지와 중복된 형태로 확인됐다. 유물은 어중구연단사선문토기, 구순각목문토기, 무문토기, 석재등이 출토됐다.
 
 -영복리고인돌
  강진에서는 198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칠량 영복리에서 고인돌 13기를 조사했다. 영복리고인돌은 청동기시대 후기에 해당되며 출토유물을 볼 때 영산강유역이나 탐진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장흥지방등과의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에서는 총 108개소에서 848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양리 유적
 성전 수양리유적에서는 다수의 무덤이 발견됐다. 지난 2004년 광양~목포간 고속도로 공사 지표조사때였다. 지금 고속도로는 개통돼 있다.이곳 고인돌은 매중주체부의 위치가 지하식에서 지상식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3. 철기시대에서 삼국시대
 기원전후 무렵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각지에서는 소국형태의 본격적인 정치집단이 성립되었다. 강진은 마한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마한에 이어 강진은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이 시대부터 해로를 통한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양유동유적
  도암 계라리 양유동 유적에서는 삼국시대 주거지 14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한변이 2~4m 내외로 소형에 해당한다. 내부시설로는 기둥자리, 부뚜막, 벽구등이 확인됐다. 부뚜막은 북쪽에 치우쳐 축조했으며 주변에는 취사 및 저장을 위한 토기가 다수 확인됐다.

 -수양리 고분
  성전 수양리 수양리유적에서는 삼국시대 석실분 3기, 석곽분 13기등이 확인됐다. 고분의 구조는 축조방법에 따라 횡혈식 석실분과 횡구식 석곽분등으로 구분된다.수양리 고분은 횡혈식 석실에서 횡구식 석곽으로 변화과정을 파악할수 있는 고분유적이다.


4.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의 지방조직 정비로 강진은 무진주에 속하게 됐다. 757년 전국적인 군현 개편결과 양무군이 강진과 해남 지역의 4개현을 포함한 주군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요인은 바다를 통한 인근지역과의 교류 증가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월남리유적
 강진군에서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건물지가 확인된 월남리유적이 유일하다. 기와편, 자기편, 주름무늬병등이 출토됐으며 기와편은 주변의 월남사지와 관련된 건물의 기와로 추정된다. 성전면 일대에는 옹기가마, 청자가마, 백자가마등이  조사됐다. 월출산 주변에 많은 사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찰의 기와나 도자기를 공급하기 위해 가마들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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