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작성할때 항상 통일성, 연결성, 강조성을 지켜야 한다

전제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단락이다.

<보기>
오늘날 우리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매우 높다. 이러한 높은 정치적 불만은 폐쇄적인 정당 정치와 관련돼 있다. 정당은 여전히 영남·호남의 지역주의에 의존해 있고, 그런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은 기득권에 안주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쟁’이라고 하지만 사실 영남이나 호남에서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지역은 선택의 대안이 없는‘일당지배체제’다. 삼성이 기술 혁신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애플뿐만 아니라 샤오미 등 새로운 경쟁자로부터의 도전 때문인 것처럼 정치의 세계에서도 도전·경쟁 없이는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정체된 것은 지역주의의 높은 벽으로 새로운 경쟁자의 진입을 막고, 기존 정당만의 독과점구조를 쌓아 올렸기 때문이다. 정개특위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번에는‘열린 정치’로의 변화 가능성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한 필자가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단락이다. 지역주의와 정당의 독점적지배의 폐단을 막기 위해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즉 지역주의와 정당의 독점적지배라는 문제점이 전제가 되어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전개는 앞단락의 내용을 보다 넓고 깊게 펼치는 단락이다.

<보기>
(가)한국사회에서‘표절 불감증’이라는 심각한 병을 넘어서는 것은 사실상 표면적인 법적 제재만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다. 표절이 사라지기 위하여 선행되어야 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표절 자체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무수한 개별인들이‘집단적 사유’나‘정답을 찾는 사유’가 아니라, 각각의 내면세계 속에서 창의성, 고유성을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문제아’로 간주된다. 가정, 학교, 회사 등에서도‘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무조건‘예’하는 것이 미덕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이렇게 표절이 사회 곳곳에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나)개개인들이 자신의‘고유한 생각’을 자유롭게 사적 또는 공적 공간에서 표현하는 것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긴급한 과제이다. 개인들이 지닌 창의적 사유를 존중하는 사회는, 이렇게‘표절 불감증’으로 지식생산의 중심공간인 대학이나 문단세계를 총체적으로 가치하락 시키지 않는다. 또한‘표절 공화국’의 비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표절 규정의 엄격성과 표절 결과에 대한 엄중한 책임성의 요구가 특별한 일이 아닌‘상식적인 일’로 간주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다)‘표절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첫째,‘예’만이 아니라‘아니오’도 존중하는 사회, 둘째,‘정답 찾기’가 아니라 새로운‘물음 찾기’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사회, 그리고 셋째,‘집단적 사유’만이 아니라‘개별적 사유’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점차적으로라도 나타날 때 표절은 극소화되고, 독창적 사유의 꽃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피어나게 될 것이다. ‘표절 사회’의 근원적인 원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 2015.06.30>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한창일 때 표절 악폐를 극복하기위한 방안으로 창의성과 고유성을 인정받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 글이다. (가)에서 이러한 제안을 한 후 (나)(다)문단에 사회적 장치에 대해 점차 내용을 확산시키고 있다. (나)문단은 ‘고유한 생각’이 존중받는 문화조성. 표절에 대한 책임성 요구를 주문했다. (다)문단에서는 반대의견 존중, 의문제기 중요성 교육, 개별사유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글을 쓰려면 단락 구성법을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나의 단락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한편의 글을 쓰는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단락 구성에 이어 짜임새 있고 알찬 단락을 구성하려면 또 다른 기법을 익혀야 한다. 단락안에는 소주제문과 뒷받침문장이 있다.
 
또 소주제문을 구체화해가는 방법으로는 상술, 합리화, 예시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와 함께 또 다시 익혀야 할 것은 글을 펼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켜야 할 사항으로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수사학의 3대원리’라 불리는 원칙인 통일성, 연결성, 강조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무시하고 글을 쓴다면 주제의 초점이 흐려지거나 잘 드러나지 않는 서툰 글이 된다. 효과적인 글쓰기 원리는 글쓰기를 바르게 인도하는 구실을 한다. 이런 원리는 모든 글짓기에 적용되는 기본 지침이지만 특히 단락을 구성하고 펼치는 데는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글에서는 이런 기본 원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경우를 자주보게 된다. 그런 글은 짜임새와 내용이 허술하기 마련이다.

글의 전개 3대 원리가운데 통일성 원리는 주제, 소주제, 뒷받침문장이 내용적으로 일치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글의 모든 문장들은 주제와 연관된 내용들로 통일되어야한다는 의미다. 주제의 개념밖에 있는 문장을 동원하지 말라는 원리인 것이다. 연결성은 뒷받침문장들을 순리적으로 배열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도록 하는 원리다. 문장이 리드미컬하다는 말은 여기에 해당된다.

강조성의 원리란 주제와 소재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질적으로 양적으로 한층 비중을 두고 재료를 동원한다는 원리다. 이와 함께 소주제문을 어디에 배치하느냐는 것도 강조효과를 가져온다. 두괄식 아니면 미괄식 양괄식 등을 상황에 따라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두괄식이 강조효과를 높이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3가지 원리는 서로 보완해서 단락의 소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어 알찬 글을 만드는 기본 지침이 된다.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어지면 소주제가 흐려져서 허술한 단락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 원리의 의미를 바로 알고 그것을 활용하는 요령을 철저히 익혀야만 글쓰기 기본기가 굳건해진다.

통일성(unity)의 원리란 주제와 그 뒷받침 문장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소주제가 “어머니 사랑”이라 하면 그 뒤에 따르는 문장들이 그 주제와 관련된 내용으로 풀이하고 뒷받침해야한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의 ‘안보관’에 대해 비판하는 단락을 꾸민다면 안보와 관련된 문장들로만 구성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국내 경제와 개헌에 관한 내용을 동원한다면 안보관이라는 주제에 어긋난다. 이 원리는 뒷받침 문장들이 소주제와 관련있는 내용들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뒤의 서술 내용에 그렇지 못한 것이 나타나면 통일성이 깨뜨려지고 결국 그 소주제는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

<보기1>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학창시절 만우절의 추억이 있다. 이를테면 가장 흔한 교실 바꾸기부터 시작해‘오늘 어느 선생님의 수업이 없다’ 같은 장난기 서린 거짓말을 한두 번쯤은 하기도 하고 또 속아도 보았으리라. 친구들에게‘나 오늘 헤어졌어’라고 말하고 위로해달라고 술자리를 만든 뒤 애인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솔로인 친구들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이 장난은 친한 친구에게만 통하는 거짓말이다.(이처럼 만우절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신문에 실린 만우절날 쓴 컬럼의 일부다. 밑줄 그은 부분이 소주제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장들은 우리들이 흔히 간직하고 있는 학창시절 겪었을 법한 만우절 추억이다. 뒷받침 문장들이 소주제문에 나타난 만우절의 추억 사례로 구체화되었다. 통일성을 갖춘 단락구성이다. 이 컬럼의 주제는 소방과 경찰이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거짓 신고를 자제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그러나 괄호속에 있는 “이처럼 만우절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문장을 덧붙인다면 주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우절 추억이 모두를 즐겁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찰과 소방서 직원을 괴롭히기도 한다.

이 문장은 통일성을 흐트려지게 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 문장을 사용하고 싶다면 문단을 바꾸어 소주제문을 새로 세우 고 관련 뒷받침 문장들로 같은 내용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통일성이란 뒷받침 문장은 소주제와 관련된 것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소주제와 주제와 관련이 없는 문장은 절대로 쓰지 말라는 철칙으로 새겨두어야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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