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2014년 6.4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안철수 대표가 이끈 새정치연합의 지지도가 호남에서 급상승했다. 이즈음 민주당 당권 도전 의지를 다져온 박지원 의원이 갑자기 전남지사 출마쪽으로 돌아섰다. 기존주자인 이낙연, 주승용의원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때도 명분은 ‘차출론’이었다.

호남에서 ‘안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후보가 아닌 ‘중진 필승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전남지사는 박지원, 전북 정동영, 광주시장은 이용섭이 나서야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가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하는 바람에 뜻을 접었다.

박지원 의원은 또다시 차출론을 들고 나왔다. 차출명분이나 지역별 대상자 선정, 셀프 차출, 자신의 여론조사 상위 랭크 등 방식과 상황이 4년전과 유사하다. 차출론 이슈화 시점에 통합목소리가 새나온 것마저 닮았다. 최근에는 전남지사 출마의사를 공개했다. 전남지사 입지자들인 주승용, 황주홍 두 의원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권토중래(捲土重來)  결기를 다져온 주 의원은 4년 전 트라우마가 되살아났을 게 틀림없다.

주, 황 두 의원은  민주당 예상후보와 대적할 역량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은 당내 엘리트그룹이다. 지난 7월 전남일보 창간 기념 여론조사에서도 주의원은 박 의원은 물론 민주당 이개호와 우윤근보다 우위였다. 황 의원도 근소한 차이로 추격했다. 전남지사의 경우 지역과 인물 양면에서 차출론이 적합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조사결과다.

차출론의 전제조건은 지목한 선거구가 상대적 열세지역이고 차출 인물이 교체대상 보다 경쟁력이 월등해야한다는 것이다.  비교 인물 경쟁력이 엇비슷하거나 되레 뒤진다면 차출 의미가 없다. 선거국면에서 경쟁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당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될 뿐이다.

박지원 의원이 ‘국민의당 지방선거에서 살아남기 대작전’에서 밝힌 지역별 차출인사 선정이유를 보면 황당하다. ▲서울시장은 ‘인물론’이 통하는 만큼 경륜이 있고 당내 ‘큰 인물’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경기도지사의 경우 지식인, 호남 출신, 블루칼라의 유권자 등이 두드러지니 법조계 출신이며 운동권 경험에 개혁 성향인 천정배 전 대표 ▲부산시장에는 부산고 출신에, 부친이 부산공고, 조부가 부산상고를 나와 지역적 메리트가 있는 안철수 대표 ▲전북도지사는 전북 출신 당내 큰 인물 정동영 의원 ▲전남도지사는 박 전 대표 자신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차출지역 안배 기준은 명분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선후보를 지낸 안철수 대표를 고향을 이유로 부산에 낙점하는 건 체면을 훼손시킨 불손한 행위다. 무모하고 오만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서울시장만 인물론이 통하는 게 아니다. 지방선거는 국회의원과 달리 인물론이 우선한다. 경기지사 선정이유는 법조계와 운동권 경험, 개혁 성향이어야 한다는 결론 명제를 이끌어내는 전제가 될 수 없다.
 
지식인과 블루칼라는 배치되는 개념이다. 양계층 지지를 동시에 끌어내기 어려운 대립이념을 상징한다. 호남인이 운동권을 선호한다는 건 편견이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지방선거에서 법조인을 후보선정 필수 조건으로 끼워넣는 전례가 없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전남북지사에 대한 차출 이유는 추상적이다. 큰 인물 이유를 내세운 전북의 경우 유성엽, 조배숙, 김관영 등 세 의원은 지사 경쟁력이 뒤지지 않는다. 이들 중에서 지사가 탄생할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선거에서 큰 인물 첫째 조건은 경쟁력 우위다. 전남은 차출 명분이 모호하다. 셀프라서 어색스러웠던 걸까.

왜, 광주시장 자리는 공식 차출 명단에서 빠졌는지도 의문이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으로선 광주시장이 지방선거 자리 중 핵심이다. 지도자급으로 한정한다해도 박주선 국회부의장이나 김동철 원내총무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이들은 직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고 언론에 시장 후보로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박 부의장은 전남일보 광주시장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게 나왔다. 서울법대졸, 사시 수석합격, 차장검사, DJ 청와대 법률비서관, 4선 국회부의장 등 경력이 눈시리다. 두 의원 고향이 전남과 광주이니 전남지사와 광주시장으로 차출해야 그의 논리에 맞다.

지도자급 차출론은 당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지지층의 기대심리를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부정평가에 눌려 빛이 바랬다. 원칙과기준이 타당성을 결여했다는 비판이 부정평가의 요체다. 지도자급 범주와 변별요소가 무언지도 알 수 없다. 차출 기준은 타당하지 않고 객관성도 결여됐다.

엿장수가 헌 고무신을 멋대로 평가하고 눈짐작으로 엿을 잘라내는 자의적, 독선적 의사 결정 행위를 연상시킨다. 셀프 차출을 위한 지도자급차출 논리를 폈다는 혹평도 나돈다. 거명된 차출대상자들은 응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도자급 차출론의 존재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 9단이 내놓은 전술인지라 선의와 거리가 먼 궁금증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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