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여건속에서 강진향토사와 다산 연구에 몰두하신 분

윤희숙 전 강진군의회 의원이 청광 양광식 선생과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소짓고 있다.
결혼 후 서예학원 등록하며 첫 만남
매일 아침 학원 오가며 서예 배워
강진향토사와 다산에 대해 꾸준히 연구
사의재 주모소재로 동상 건립 처음 제안

나는 도암면 계라리가 고향이다. 강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여상고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YMCA소속으로 Y-TEEN의 회장을 맡아 활동을 하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5대와 6대 강진군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군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기도 했고 적십자봉사회에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며 강진군 회장과 광주․전남지역 회장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열심히 활동해왔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청광 양광식 선생님을 꼽고 싶다.

내가 청광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3년 남편과 결혼 직후인 1985년이었다. 당시에 28살이던 내가 평소 관심이 많았던 서예를 배우기 위해 강진읍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했던 청광 선생님을 찾아갔던 것이다. 선생님은 무뚝뚝한 인상이셨지만 다양한 분야에 학식이 많아 학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선생님은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활동내용과 저술활동 등 다산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계셨고 상당한 자료와 지식을 갖고 계셨다. 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체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하셨고 나에게도 알려주기도 하셨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다. 이후 선생님에게 서예를 배우면서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던 나지만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특히 지난 2014년 6월 4일 진행됐던 지방선거에서 군의원에 출마했지만 아깝게 떨어지면서 심적으로 충격이 컸다. 기대가 많았던 선거였기에 더 상심이 컸는데 이때 청광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다시 잡고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선거에 떨어진 이후 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서예 공부에 매진했다. 새벽 5시 30분부터 매일 2시간씩 공부를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에도 서예를 했고 청광 선생님을 찾아가 여러가지 대화도 나눴다.

선생님은 나에게 여러가지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고 다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다. 이렇게 청광 선생님과 함께 서예에 매진한 덕분에 서예 실력도 급성장했고 상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의 마음도 다시 추스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내가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항상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때문이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당시에만 하더라도 선생님은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에 대해 연구하고 강진의 향토사에 대해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들게 됐다.

한가지 분야에 매진하며 연구하는 모습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흔들림없는 모습이셨고 이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역에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바로 선생님이 남긴 업적이 우수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군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강진읍 동성리에 사의재가 있었다. 지금은 우물을 비롯해서 권역화돼서 사의재 일대가 대규모로 복원돼 강진읍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초창기만 하더라도 단순히 초가지붕만을 얹은 사의재만 복원돼 있었던 적이 있다. 이때 어느날 청광 선생님이 나를 불러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청광 양광식 선생
바로 다산 선생이 사의재에 머물 당시 주모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강진을 찾아온 다산 선생에게 사의재 주모는 조선시대 당시 남성중심 사회에 대해 물어보았고 주모에 대해 다산 선생이 미처 몰랐던 사실과 여성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와 함께 청광 선생님은 이 점을 살려 사의재 주변에 동상을 건립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는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에 담당부서에 건의해 사의재에 동상이 건립될 수 있었다.

또 선생님의 조언덕분에 나는 군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마을이장들이 안전사고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장재해보험가입을 군에 요청하기도 했고 여성농업인 지원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선생님에게 서예를 배웠던 사람들끼리 모아 만들었던 율우회의 회장도 맡아 3차례에 걸쳐 회원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청광 선생님은 일평생을 강진의 향토사와 다산 선생에 대한 연구를 하며 보내셨다. 다산하면 양광식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런 선생님의 업적을 지역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앞으로 선생님의 업적을 기록으로 남겨 후손들에게도 알려주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강진의 후배들이 함께 힘을 모아 청광 선생님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연구성과를 정리해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알려져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 바램이 지켜질 수 있길 바란다. 또 마지막으로 요즘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하루빨리 건강해진 모습으로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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