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강진진보연대 상임대표

“탄도미사일 발사”, “6차 핵(수소폭탄)실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만장일치 결의” 등 속보가 연일 터져 나온다. 국민을 호구로 아는 일부 몰지각한 정치 인사들은 “전략 핵무기 재배치”, “핵무기 개발”을 운운한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로 바람 잘 날 없는 요즘, 우리는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평화란 무엇일까. 평화는 사전에서 “①평온하고 화목함, ②전쟁이나 무력충돌에서 국내적 국제적으로 사회가 평온한 상태를 말함”이라고 정의한다. 평화의 반대에는 전쟁, 약탈, 무력 충돌, 탐욕, 공포 등이 있다. 

전쟁과 약탈은 항상 힘의 균형이 깨어 졌을 때 일어난다. 항상 많은 사상자와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안기고 평화를 깨뜨린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사이에 있어 주변국가에게 끊임없이 시달려 왔다. 특히 집권세력의 판단 미숙으로 온 국민을 도탄에 빠뜨릴 때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병자호란이다. 명청 교체기에 친명파는 친청파를 물리치고 인조반정으로 중립외교를 표방한 광해군을 폐위하였다. 서인(친명파)은 친명배금 외교로 병자호란을 자초하였다. 전쟁의 패배로 1637년 인조는 삼전도굴욕(삼배구고두례)을 겪고 50만에 이르는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균형잡힌 외교와 군사력의 절박함은 지난 과거의 일만이 아닐 것이다.

힘의 균형을 맞추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은 탁월한 외교와 안전보장을 위한 군사력이다. 고려 초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으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고 강동 육주를 획득한 서희(AD942~998 문신, 외교관)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다. 정확한 주변 정세를 파악하고 적절히 잘 이용하여 거란을 물리침으로서 외교의 정석이 되었다.

평화를 위해서는 군사력을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핵위협을 구실로 전술핵재배치와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며 전쟁위기를 조장하는 세력들이 있다. 전술핵재배치는 미국에게 주권을 영원히 위탁하는 종속관계만 가중될 뿐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자국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일 뿐이다.

핵무기 자체 개발은 국제 질서에서 NPT탈퇴와 국제사회 고립으로 이어진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은 불가능하다. 반대를 위해 반대를 하는 보수 야당의 무책임한 주장이다. 이익만을 위해 쫒아서 무식을 우롱하는 반통일 기득권 세력은 반드시 심판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 모두가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남한 공격용 무기로 착각하고 있다. 남북간 동족상잔의 비극은 1953년 정전협정으로 중단됐다. 끝난 것이 아니라 중단한 것이다. 정전협정은 중국의 중재로 미국과 북한이 맺었다. 싸움의 대상은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은 북한을 70여년간 봉쇄하고 경제제제를 실시했다.

오히려 북한이 정전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과 한미 연합훈련 중지를 요구하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전쟁억제는 아닐까? 노무현정부 때 6자회담(미국,중국,러시아,일본,남한,북한)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북한은 영변원자로를 폭파하였다. 하지만 부시정부과 이명박정부는 이에 따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김정일은 뇌출혈을 일으키고 끝내 사망하였다.

이 모든 사항들을 보고 배운 김정은은 미국과 남한을 믿지 않는다.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탄 완성만이 미국의 전쟁위협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긴 듯하다. 남한을 인질삼아 미국과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혼자 죽지 않고 다 같이 죽자는 상황에서 남한의 무기축적은 전쟁 상존의 공포만 가중될 뿐이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군대와 무기 배치 없이도 유럽사회에서 스스로 잘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무기를 채울 것인가, 비울 것인가를 생각해 볼 시점에서 대륙을 누볐던 징기스칸의 부관 야율초재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행복전도사들이 자주하는 말 “행복의 시작은 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거짓말이다. 주변의 여건을 무시한 채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은 자신의 변화만으로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른 사람도 변해야 한다. 사회도 살 만하게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변화가 중요하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장자는 전쟁이 일상이던 세상에서 죽음을 현실로 살면서 행복을 꿈꿨다. 장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산속으로 들어가 도 닦고 신선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본성을 되찾자는 주장이다. 나 자신의 본성을 되찾고 상대의 본성을 존중하라는 말이다.

억지로 상대방을 바꾸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내 시선을 바꾸는 노력, 내 자리를 옮기는 수고, 그게 오해를 풀고 편견을 깨는 첫 걸음이다. 평화는 탐욕과 공포, 전쟁과 약탈로 이뤄지지 않으며,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할 때만 가능하다. 민주주의 평화통일만이 우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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