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김종성 안양지청장과 이완규 부천지청장이 사표를 냈다. 최근 검찰인사에서 사법연수원 동기 아홉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 유력한 승진후보였던 둘은 탈락했다. 그들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 대표로 참석했던 인물이다.

노 대통령이 “검찰에 간섭 안 하겠다”고 하자 당시 수원지검 검사였던 김 지청장은 이를 반박했다 “대통령에 취임하시기 전에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라는 노 대통령 말씀이 이때 나왔다.

이완규 검사도 아픈 데를 찔렀다. “실질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정치권의 영향력이 수없이 저희 검찰에 들어왔다는 사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고 썼다. 14년 뒤 목불인견 대상이 제거된 셈이다. 끔직한 보복 인사를 다룬 블랙코미디같다.

강진에서 언론계 후배들과의 만남을 끝내고 귀가하던 중 라디오방송을 통해 대화내용을 듣고 있었다. “막하자는 거죠”라는 말이 나오자 운전 하던 후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외마디를 던졌다. “아니, 어쩔려고” 사표를 낸 두 지청장의 인사는 무안출신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첫 작품이다.
 
인사를 설계한 문무일 검창총장과 인사실무책임자인 박택균 검찰국장은 민주성지라는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검찰 권력 정점에 있는 광주‧전남 사람들이 의로운 두 검사를 지검장 승진에서 탈락시키고 사퇴로 내몬 꼴이 됐다.

이 지청장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사직 인사̓를 통해 비판을 더했다. “청와대가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하면 검찰이 청와대 편이라는 인상을 준다.” “검찰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주도해 전례 없는 인사를 했다.” 언론도 ‘청이 주도한 전례없는 인사’ 라고 혹평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주도한 검찰인사는 허울좋은 검찰 권력의 실체를 까발린 결과가 됐다.

호남인사 우대의 화룡정점격인 이낙연 국무총리에게서도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력이 느껴진다. “민생 문제는 제가 최종적 권한을 가진 책임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겠다.” 이 총리의 첫 출근 소감이다. 책임총리제를 강조해왔던 문재인 대통령도 임명장 수여식에서 “헌법상 총리의 권한을 보장하겠다.

일상적 국정은 총리의 책임이라는 각오로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 다짐과 약속과 당부는 온데간데 없고 현실은 대통령 언행 불일치만 확인시켜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구성과 정책 결정과정에서 이 총리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인사정국에서 야권은 “책임총리로서 문 대통령께 직언을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허수아비 총리”라고 비판했다.

얼굴보기 어렵다던 이 총리는 5.18을 다룬 ‘택시운전사’가 상영된 영화관에 나타나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이 TV에 잡협다. 사드, 원전중단, 부자증세 등 중요 정책에 대한 소신발언을 한 장면은 지금껏 한번도 비춰지지 않았다. 원전중단은 신중히 다루어야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정도가 뉴스를 탓을 뿐이다.

총리실 내부 인사도 이 총리가 아닌 청와대가 좌지우지 한다는 뒷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대표적 친문(재인) 인사 배재정 전 의원이 총리 비서실장이 됐다. 대선 당시 부산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은 민정실장에 임명됐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의 권한이 이 모양이니 호남장관들의 고유권한 침해는 불문가지다.

그렇지만 내각 명단표를 들여다 보면 눈이 시리고 입이 쩍 벌어진다. 국무총리 이낙연(전남), 사회 부총리겸 교육부장관 김상곤(광주), 장관급 청와대비서실장 임종석(전남)과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광주), 법무부장관 박상기(전남),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영록(전남), 검찰총장 문무일(광주).

문재인 정부의 내각 권한 축소는 정책 이슈가 발표될 때 확연이 드러난다. 그때마다 정책 수립과 조정과정에서 장관의 소신은 뭉개진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보이지 않는 의사 결정구조가 굳혀졌다는 메시지가 잡힌다.

국무회의에서 주무장관이 말한마디 못꺼낸 고리원전 5.6호기 공사중단 결정이 대표적 사례다. 입다문 주무 장관이지만 정책 결정 후에는 실행에 나서고 잘못은 모두 떠안게 된다. 호남사람 장관시켜주었더니 형편없더라는 말이 나올법도 하다. 책임 떠넘기기와 말 바꾸기 전력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호남우대는 국민의당 존재가 한몫 한다는 주장이 정설이다. 다당제를 이끌어냈던 정당이 집권세력 손아귀에 들어가면 허울 좋은 호남 권력마저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국민의당을 사수하겠다는 안철수의 당권도전 저지 시도가 선의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여론조사에서 광주·전라가 항상 최고다. 국민의당은 한 자리 수에 묶어놓고, 민주당엔 60%가 넘는 지지를 보낸다. 광주·전라사람들은 속빈강정에 비유된 호남권력의 실상은 알지못한 채 허울에 넋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냉철한 성찰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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