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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 생태공원 일대는 강진 역사의 보물 창고다 <1>군동 백금포에서 목리마을까지바닷물이 깊이 들어오는 곳… 고대부터 강진의 관문역할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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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7  09: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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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이 강진만으로 유입되고 있는 군동면 영포일대와 강진읍 목리, 남포마을 일대 모습이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이 일대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수많은 화물이 뱃길을 이용해 전국으로 유통된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다. 이때문에 이 일대는 강진의 해양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곳이다.
요즘 탐진강 하구와 강진천이 만나는 강진만 일대에 강진만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일대에는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남해안지역 최대 생물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좌우로 펼쳐진 20만평의 갈대군락지와 청정 갯벌을 자랑하며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등 철새 집단서식지 등 생태가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자연공간이다.

그러나 이 일대는 과거 뱃길이 주 이동수단이던 시절, 강진의 관문으로서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 강진의 역사가 구구절절히 스며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해안 최대의 생태공원이자 남해안 해양문화와 역사를 집약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사공원이나 마찬가지다. 

탐진강 하류인 군동면 호계리 일대에서 부터 강진읍 목리를 거쳐 남포에 이르는 구간에는 강진의 근현대 문화사, 대외교류사, 해양문화사를 아우르는 역사가 산재해 있다. 이는 강진군이 진행중인 생태환경 복원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경우 큰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과 그 해안을 따라 갯벌이 펼쳐져 있고, 그 주변에 아름다운 갈대밭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강진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환경도 좋다.
 
강진군이 이 일대 갈대밭을 개발하면서 이를 구경하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강하류와 바다주변에 있는 마을들은 강진읍 중심가와는 일정부분 떨어져 형성돼 있어 바닷가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강진읍 중심가와 마을의 중간에는 논경지가 조성돼 있다.

강진읍 남포마을 서쪽으로는 강진읍 서기산에서 발원한 금강천이 유입되고 있다. 오래전에는 남포마을 위쪽에 있는 도원마을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이 일대에 오일장이 서기도 했다.

군동 백금포

군동면 호계리 일대부터 내려와 보면 우선 백금포란 곳이 있다. 백금포는 행정구역으로 강진군 군동면 호계리 영포마을의 다른 이름이다. 백금이란 쌀을 의미한다. 금사봉에서 내려온 흰 모래를 뜻한다고도 한다. 이 포구가 일제강점기때에는 쌀을 비롯한 강진의 물품을 전국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수많은 배들이 들락날락하던 큰 항구였다. 일제강점기때 강진은 쌀 주산지였다. 지금은 해남이나 장흥등에 간척지가 많이 들어서 쌀을 많이 생산하지만 강진은 당시 천혜의 농경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는 작천의 쌀을 원활하게 빼내기 위해 지금의 군동 영포~까치내재~작천에 이르는 전용도로를 개설했을 정도였다. 특히 강진은 제주에 쌀을 공급하던 주 공급지였기 때문에 이곳 백금포에서 쌀을 싣고 제주를 오가는 돛단배들이 장관을 이루곤 했다. 강진읍 남포가 주로 어선들이 모여드는 중심 포구였다면 백금포는 일제강점기부터 주로 상선과 같은 대규모 상업거래를 하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로 발전했다.

백금포의 옛 영화 말해주는 창고들

백금포에서는 일본은 물론 제주도, 서울, 부산등 전국으로 쌀이 실려 나갔던 곳이여서 유난히 창고가 많은 곳이었다. 배가 쉴새없이 들락날락했기 때문에 여기에 실어 보낼 화물을 미리 확보했기 때문이다. 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백금포에는 창고가 100여개를 넘었고, 50톤 안팎의 대형 풍선 30여척이 들락날락 거렸다. 강진의 거부 김충식 선생은 백금포에 주요 창고를 설치하고 창고업과 해운업에 뛰어 들었다.

강진의 유명 기업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차종채 선생 역시 백금포에 창고를 여렷 두고 해운, 비료, 주조, 관염 등의 사업을 했다. 또 백금포에는 벼를 도정하는 크고 작은 정미소들이 많아서 왠만한 대도시 포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창고가 많은 곳이었다. 백금포 창고에는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창고 주변에는 숙박업소와 유흥시설이 많았던 곳으로도 꼽힌다.   

석빙고(石氷庫)를 아십니까

영포마을에는 석빙고(石氷庫)가 있다. 석빙고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 얼음이나 어획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한 여름에 시원하고 싱싱한 생선을 꺼내먹었던 곳이다. 백금포에 있는 석빙고가 비교적 온전한 모양으로 전해온다. 크기는 서너평 정도. 실내 높이는 2m 정도이며 2개의 실로 이뤄졌다. 이곳은 지금 아무도 찾지 않은 폐허가 되어 버렸지만 한 여름에 찾는 석빙고는 아직 냉기 비슷한 분위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백금포는 바닷고기를 잡아 운송해 올 수 있는 해로가 편리했고 주변에 여름에 시원한 생선과 얼음을 찾는 부호들이 많이 살았다. 석빙고는 백금포가 한창 번성하던 1930년대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금포 석빙고는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때 유랑객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섬에서 육지로 이사 온 사람들의 임시 거처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금은 인근 주민들이 간단한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강진은 와우형국(蝸牛形局)~
그래서 우시장이 최고

강진우시장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진은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인근 장흥, 완도의 소들이 대부분 강진우시장에서 거래됐다. 강진우시장이 2002년 지금의 강진읍 목리 탐진강 주변으로 옮겨졌지만 그 전에는 강진오일장내 지금의 군내버스터미널 자리에 있었다. 

우시장은 강진읍 시장에서 가장 번잡한 곳이었다. 장날이면 새벽부터 장이 서면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소를 몰고 새벽 2시에 시장에 도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완도와 장흥, 해남, 영암의 소들도 모여들었다. ‘강진쇠전(우시장)’은 그렇게 명성을 떨쳤다. 탐진강변으로 옮겨간 우시장은 현대식으로 변했다. 매매도 전차입찰을 통해 진행한다. 강진읍 장날인 4일과 9일에 우시장에서는 평균 500여마리의 소가 거래되고 있다.

탐진강 하류 건너가던 ‘목리나루터’

강진읍 목리에 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1961년 만들어졌다. 이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강진의 동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저쪽 군동 비자동 마을쪽으로 건너다니곤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전해온다.

나루터가 교통의 관문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나루터 주변 사람들의 텃새도 심했었나 보다. 동쪽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다니기가 여간 팍팍했던 것으로 보인다.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루터 주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곤 했는데 불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배를 타고 군동쪽으로 건너가서는 한참을 다시 걸어서 내려가다가 칠량면으로 접어드는 재에서 고개를 돌려 화풀이를 했다는 재미있는 구전이 전해온다. 그 재의 이름이 돌아보기재다.

와우(蝸牛)가 풀을 뜯어 먹는 곳
 ‘초지(草地)’

초지(草地)는 목리(牧里)마을의 옛 이름이다. 예전에 초지라고 불렀다. 초지는 소가 먹는 풀을 의미한다. 소를 먹이는 풀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강집읍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상으로 “황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전해왔다. 군동 금사봉에서 읍의 형세를 보면 우두봉이 한눈에 보이고 읍의 형국을 유심히 보면 흡사 황소가 그 턱을 목에 걸고 코김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두봉은 황소의 머리를 뜻함이요 읍성은 소의 얼굴을 말함인데 양쪽 귀를 넌지시 펼치고 엎드린 모양은 천만년의 풍우에도 끄떡없는 의연함을 말없이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군청앞에 있던 우물은 원래는 쌍샘으로 황소의 콧구멍에 해당되고 지금의 군청사터는 코등이라고 한다. 초지는 풍수지리적으로 황소가 풀을 뜯어 먹는 곳이라는 의미다.

식도락가들 침흘리게 한 목리장어

강진읍 목리 앞바다는 탐진강과 강진만이 절묘하게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민물장어가 많이 잡혔다. 이 일대는 수심과 수온이 장어가 서식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강진장어는 예부터 대합과 함께 매우 유명한 특산물로 평가받아 왔다.

장어는 주낙으로 주로 잡지만 갈쾡이, 뜰망, 발, 돌담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잡아 낸다. 요즘도 돌담을 이용해 장어를 잡는 전통이 전해져 온다. 큰 것은 몸길이가 60㎝가 넘는 것도 있다. 목리다리 밑에는 오래전에 평상을 깔고 장어요리를 하는 곳이 있어서 여름철이면 전국에서 식도락가들이 몰려들곤 했다. 

한국전력이 목리에 있는 까닭은

강진읍 목리마을에 있는 한전강진지점은 주변 6개군을 관할하는 전기공급기관이다. 이처럼 한전강진지점이 목리마을에 있고 6개군을 관할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30년대 부자들이 많았던 강진은 문물혜택을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빨리 받았다. 인근지역을 통틀어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강진의 최대 부호였던 김충식 선생은 1929년 자본금 50만원을 투자해 강진에 소화전기주식회사라는 전력회사를 창립해 주변지역에서 가장 먼저 전기를 사용했다.
 
지금의 목리 한전강진지사가 있는 자리다. 전기수요는 갈수록 늘어났다. 군동 백금포와 목리등에 산재해 있던 정미업자들로부터 전력공급 요청이 늘어났던 것이다. 소화전기는 선로를 설치하고 목포전등(주)에 전력을 공급받았다. 1937년 3월 강진에 남선전기(주) 목포지점 강진출장소가 들어선다. 남선전기 강진출장소는 1961년 한국전력(주) 전남지점 목포영업소 강진출장소로 바뀌었다가 1982년에는 한국전력공사 전남지사 강진지점으로 태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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