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는다

윤이자 강진군여성이장단장이 젊은 시절 함께 새마을운동에 매진했던 박기환 전 강진군새마을지회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부녀회장과 새마을회장으로 첫 만남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 타의 본보기
군동중학교 설립, 3.1운동 기념비 건립
대한곡물협회장 맡아 활발히 활동

나는 대구면 구곡마을 이장이면서 강진군 여성이장을 대표하는 단장을 겸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에 동참했으며 현재는 새마을을 사랑하는 모임, 즉 새사모 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70년 4월에 새마을운동이 강진에서도 시작돼 나는 마을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았고 남편은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게 됐다. 이때 지붕개량, 마을안길 확장 등 다양한 사업들을 마을주민들과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 40년이상 새마을을 사랑하며 살아오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마을안길을 바라보면 새마을운동을 했던 당시가 떠오르면서 한 사람이 생각나곤 한다. 바로 박기환 전 강진군새마을지회장이다.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을 시작해왔던 나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진군 새마을부녀회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게 됐다. 이때 박기환 회장님을 처음 만나게 됐다. 당시에 박 회장님은 강진군새마을지회장으로 활동하고 계셨고 대한곡물협회장으로도 활발히 활동하셨다.

박 회장님은 검소하고 소탈하시면서도 인자하고 생각이 깊은 분이셨다. 내가 아직까지 박 회장님이 하신 말씀중 잊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는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새마을부녀회장으로서 제주도로 2박3일 수련회를 떠나게 됐다. 그 때 강진군 새마을 임원진들 150명이 참가했던 큰 행사였다. 제주도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박 회장님과 함께 나란히 앉게 됐는데 이 때 박 회장님은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점들을 나에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러곤 자신이 겪었던 일화도 소개해주셨다.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던 박 회장님은 20살이 되던해에 강진의 부자였던 차종채씨가 운영하던 사업체의 총관리인이 됐고 5년 후에는 모은 돈으로 논 4천평을 구입할 만큼 부자가 됐다. 이후 차종채씨가 운영하던 정미소를 인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서 살던 사촌동생이 박 회장님을 일본으로 초청해 가방 2개에 헌옷을 담아 주었다. 사촌동생은 가난했던 박 회장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헌옷을 선물한 것이었다.

박기환 전 강진군새마을지회장
이후 박 회장님은 강진으로 일본에 살던 사촌동생을 초청했고 자신이 운영하던 정미소를 보여주자 놀라며 무릎을 꿇고 형다운 대접을 해주더라는 내용이었다.

박 회장님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에 이 말을 새겼고 지금까지 이 말을 생각하며 행동을 하고 있다. 나는 새마을부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기때문에 당시에 집으로 당시 군수님과 박 회장님, 경찰서장 등 기관단체장을 초청해 식사대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때마다 박 회장님은 항상 빈손으로 오지 않고 그릇세트를 비롯한 선물을 사오셨고 나의 긍정적 마인드를 칭찬해주셨다. 그럴때면 나는 박 회장님에게 직접 담근 동동주를 선물하곤 했는데 그 맛이 좋았는지 주조장을 차리면 자신이 후원해주겠다는 말까지 하실 정도였다.

이뿐만 아니라 박 회장님은 경제적으로 넉넉해진 이후에도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역발전을 위해 항상 노력하셨다.

1970년대 중반에는 현재 강진의료원 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3.1운동 기념비’ 건립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고 교육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1978년에는 군동중학교 설립위원장을 맡아 이듬해에 학교를 완공하기도 했다.

항상 박 회장님은 나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항상 도움을 주려고 하셨다. 1991년 전남도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시고 몇년 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입원해 계실때도 강진의 읍면회장들과 함께 강진에서 첫 차를 타고 문병을 가 저녁차로 다시내려왔던 기억도 있다. 그로부터 몇일 후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박 회장님이 나에게 제주도 가는 차안에서 해주신 말씀이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나 자신도 박 회장님의 말처럼 마을의 여성이장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5년부터 마을 이장을 맡아오면서 마을회관의 세금납부를 제외하면 되도록 마을기금을 사용하지 않고 사비를 사용하고 있다.

또 마을내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세금대납을 해주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차로 읍내로 모셔다 드리곤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박 회장님에게 배운 것이었다. <정리=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