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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학동, 탑동마을 새꼭재를 통해 도암장 이용강진만 갯벌의 풍족한 게와 바지락 잡으로 다녀재 넘고 징검다리로 하천 건너면서 사연도 많아교통수단 발달로 인해 군계를 경계로 생활권 분리 주작산 서쪽능선을 타고 올라온 군계는 주작산자연휴양림과 작천소령을 지나 덕룡산과 마나고 덕룡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첨봉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고 덕룡산관광농원을 지난다. 다시 위쪽으로 길을 잡은 군계는 도암면 봉황마을 부근을 지나게 된다. 지금까지는 덕룡산과 주작산 등 높은 산이나 하천을 경계로 군계가 지나왔지만 봉황마을 부근부터는 100m남짓의 높지 않은 산을 중심으로 군계가 지나게 된다. 덕룡산관광농원 부근의 대산재를 통과한 군계는 봉황마을과 해남군 옥천면의 경계인 새꼭
심층취재
오기안 기자
2016.03.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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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 어패류 피해 대책세워야”주장 90년대까지만 해도 목포에서 사는 사람들은 평생 식수걱정을 하고 살았다.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 때문에 늘 먹는 물이 부족했다. 인근 무안이나 신안, 영암등에도 큰 산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할 장소가 없었다. 목포사람들은 조금만 가뭄이 들어도 제한급수를 했고, 가뭄의 정도가 세지면 멀리서 배로 물을 공수해와 사용하곤 했다.목포는 95년부터 주암댐 광역상수도에서 하루 12만t의 용수를 공급받고 있지만 여전히 물부족을 겪고 있었다. 영암, 해남 등 소규모 상수원에서 물을 끌어 쓰고 있으나 갈수기에는 하천과 소규모 저수지가 말라 용수수급에 불안을 가지고 살았다. 영산강물은 수량은 많았으나 수질이 극히 좋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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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6.03.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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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찬반논쟁70년대 이후 가장 첨예했던 주민대립 강진주민 1만6,000여명 유치찬성 서명유치반대위 대대적 주민집회 개최군정조정위원회 유치반대 결정으로 매듭2000년이 왔다. 이제 해방된지가 벌써 55년이 됐다.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이 진행됐다. 정치적으로는 민선군수 시대가 열려 제도적으로 풀뿌리민주주의 시대 토대가 마련됐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밀레니엄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1900년도에서 2000년으로 넘어올 때 강진의 각종 지표를 살펴보자. 1999년말 그러니까 2000년으로 넘어갈 때 강진인구는 1만8,429가구에 5만1,238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강진의 인구는 2000년으로 접어든 그해에 5만명선이 무너져 4만
심층취재
주희춘 기자
2016.03.2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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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을 남도답사 1번지로 명명강진이 전국에 알려진 계기 돼94년 감사패, 96년에는 명예군민증 수여 1993년 5월 한권의 책이 전국서점가에 나온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되며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대중적 가치를 송두리째 바꿔 놨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우리 문화재에 심오한 뜻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다녔다.그 책이 바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강진군은 가장 앞쪽에 등장한다.저자인 유홍준 당시 영남대학교 교수는 강진을 ‘남도답사 일번지’로 명명했다. 나이 47세의 영남대학교 미술평론교수는 첫 답사기척지로 강진을 꼽고 있었다.월남사지와 무위사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남도의 봄을 얘기하면서 영랑생가와 다산초당, 구강
심층취재
주희춘 기자
2016.03.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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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하멜고향과 교류, 제1회 청자문화제 개최강진청자자료박물관 개관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 민선군수때 시작 90년대 가장 큰 정치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민선군수를 선출했던 일을 빼 놓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군수는 정부가 임명해서 내려보내는 자리였다. 해방직후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후 1952년 첫 지방선거가 치러졌으며, 이후 1960년 12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계속되다가 5.16 이후 중단된 후 1990년에 부활됐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방의원들을 뽑는 것이었다. 1990년 지방자치가 부활된 후에도 여전히 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해 내려보낸 임명직이었다. 진정한 지방자치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94년 3월 지방자치법이 개정돼 4년 임기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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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3.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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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1964년~77년까지 발굴작업국립중앙박물관 최순우 과장과 정양모 학예관보는 1964년 초 고려청자 기와를 찾아 무작정 강진으로 내려온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단서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강진의 대구에서 청자기와편 하나를 수집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구에 도착했을 때 눈에 보이는 고려청자 가마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과 도굴꾼들에 의해 한바탕 쓸고 지나간 후 파괴돼 흔적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순우 과장과 정양모 학예관보는 나침반과 지도만 들고 과거 도요지로 추정되는 언덕을 수없이 오른다. 그러던 5월 늦은 어느 봄날이었다. 그날도 대구 사당리 일대를 돌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청자파편이 가득담긴 헌 소쿠리를 들고왔다. 소쿠리속을 들여다 본 최과장은 깜짝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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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3.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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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 한국통신, 강진교육청, 한전강진지점등 모조리 거론최인수 31사단장이 강진군 방문해‘이전없다’직접 해명99년 6월 강진세무서 해남세무서로 흡수 전격 발표1934년 어렵게 유치했던 세무서‘해남세무서 강진지서로’ 지난호에 설명했듯이 강진인구는 74년에서 75년 사이와 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큰 지각변동을 겪는다. 보통 한해에 1~2천명씩 감소하던 인구가 두 기간 동안에는 1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줄어들었다. 1998년에서 1999년 사이에 강진에서 줄어든 인구가 9천명이 넘었다. 당시 한해 동안 9천명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지역내에서는 이상한 소문들이 돌고 또 돌았다.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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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3.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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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연장, 올해 연말까지 기한 연장여부 이목 집중 산성대~광암터 탐방로, 영암읍 경제활성화 상당한 기여중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가 지난 2007년 입장료 폐지로 인한 탐방객 증가와 자연자원 훼손을 막기 위해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던 무위사~미왕재 구간(2㎞)의 기간이 올해 연말까지로 다가오면서 특별보호구역 지정이 해제될 수 있을지 여부가 등산 동호인들과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위사~미왕재 구간은 당시에 장군봉 일원과 동원농장~미왕재 일원과 함께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장군봉 일원과 동원농장~미왕재구간은 야생식물군락지로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오는 2026년까지 출입이 통제됐고 무위사 구간은 훼손된 탐방로를 복원하고 희귀식물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2011년까지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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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03.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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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광주 전남권 첫 축제 “가족단위 관광객 더할 나위 없는 추억”오동통통~ 쫄깃쫄깃~ 맛과 영양 최고, 고려 신돈이 즐겼다는데…올 시즌 광주 전남권 첫 축제, 강진사초개불축제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청정해역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생태 서식지인 강진만이 무대다. 맛의 1번지 강진의 참 맛을 느껴보는데 좋은 기회다. 격년제로 열리기 때문에 이번에 놓치면 내후년을 기약해야 한다. 겨울 동장군의 기세를 무력화 시키는 강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정은 확실한 덤이다. 원기회복에 안성맞춤인 싱싱한 강진 개불의 생태, 특성, 효능, 방문에 필요한 축제 일정을 미리 짚어봤다.이제야 진면목을… 생김새와 특성딱 봐도 먹음직스럽다. 생긴 모양이 개의 ‘그것’을 닮아 개불이라 부른다. 몸을 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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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03.0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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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남북 시인들 교류하며 자취 밝혀져… 원래는 장성 출생 1990년 남북교류 차원에서 남쪽의 시인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이를 한겨레신문이 동행취재한 적이 있었다. 한겨레신문은 1990년 9월 4일자에 북한에서 만난 시인들의 이야기를 두차례에 걸쳐 실었다. 그중에 북한의 유명 시인 오영재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때 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남쪽 가족들과 군동 화방마을에서 사는 그의 남쪽 친구들이었다. 오영재 시인은 6.25때 월북 된 후 그 생사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고향은 장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은 강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지금도 많은 자료에 그의 고향이 강진으로 되어 있다. 그는 1946년 군동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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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6.03.0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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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단위 인구감소 20%대, 면단위 상권 붕괴자동차는 1970년 43대, 2013년 9,320대‘급증’ 광복 70주년 동안 강진의 변화과정을 기술하면서 인구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구는 그 지역의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표시할 수 있는 수치중의 하나다. 해방 직후인 1945년 강진인구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각종 자료에서 강진의 인구가 가장 먼저 보이는 시기는 1955년이다. 이때 강진인구가 10만4천748명으로 나온다. 이후 강진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인다. 그러다가 1960년에 11만명을 넘어선데 이어 1963년에는 12만4천명으로 12만명대를 넘어서고 65년 12만7천878명을 최고조로 67년도에는 12만7천170명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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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3.0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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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역환경변화 조사후 강진만 패류 피해원인조사 따로해야패류피해 원인조사 기간도 2~3년 소요, 피해 누적은 계속장흥댐 건설이후 민물유입 줄어 강진만 서식환경 변화 꼬막, 맛조개 등 패류 자연산 찾아보기 어려워 강진만 어패류 감소의 원인을 찾기 위한 용역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원인이 나오는 데에만 2~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시간이 지나갈수록 어민들의 피해만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용역비 문제로 시간을 끌어오다가 해양수산부가 강진만 어업피해 보상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강진만해역환경변화조사’를 지난해 4월부터 실시하면서 어려운 첫발을 내딛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진만해역환경변화조사의 경우 올해 6월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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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02.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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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무슨 고려청자가…” 최초 신고받은 공무원 외면하기도1995년 10월 6일의 일이다. 무안군 해제면 바다밑에서 14세기 고려상감청자류가 무더기로 인양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민간 잠수부들이 이곳에서 120여 점의 유물을 찾아내면서 발굴이 시작돼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고려후기 청자 639점을 건졌다. 청자들은 강진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만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 전에 몇차례 바다에서 청자를 인양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렇게 산지가 정확하게 강진으로 분석된 곳은 사실상 무안 해제 해저유물이 처음이었다. 강진에서 생산된 청자가 개경으로 갔을 것이라는 추정은 있었지만, 고려시대에 분명한 뱃길이 있었다는 사실이 차츰 공식화되어가는 과정이 됐다.이때 발굴된 유물은 유물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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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2.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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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서남부지역 최초 공업전문대학 추진주인 세차례 바뀌고 개교 지연 90년대로 접어들면서 강진 사람들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강진에 대학교가 설립된다는 것이었다. 대학교 설립은 강진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강진농업고등학교를 4년제 대학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을 다방면으로 했으나 오랫동안 물거품이었다. 대학설립 인가는 1991년에 나왔다. 당시에는 전문대 설치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정부에서는 학생들이 취업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전문대학 설립을 적극 권장하고 있었다. 산업현장에서는 전문대 졸업 수요자가 급증했다.인가된 대학은 강진공업전문대학이었다. 전남서남부지역에 최초로 설립되는 공업전문대학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전문대학 설립 바람속에 전남서부지역 최초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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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2.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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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전까지 해남군 옥천면에 속해새꼭재로 해남 학동, 탑동마을주민과 교류봉황제 확장으로 농토상실돼, 마을위축 원인돈사유치로 주민들 찬성, 반대 갈등나타나신전면 사내방조제를 관통한 군계는 영수마을과 어관마을을 지나 주작산 서쪽능선을 따라간다. 주작산 능선을 타고 올라가다가 주작산자연휴양림과 작천소령을 지나 덕룡산과 만나게 된다. 이 곳에서 군계는 덕룡산 능선을 따라 첨봉을 지나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고 덕룡산관광농원 부근을 지나게 된다.덕룡산 관광농원은 지난 1997년 사업승인을 받아 수영장, 음식점, 숙박시설 등을 갖춘 시설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찜질방도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귀농인들이 자리를 잡아 한옥 10여채가 신축돼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덕룡산관광
심층취재
오기안 기자
2016.02.1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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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회 30년만에 부활, 91년 군의원 11명 뽑아90년대에 두차례 지방선거 열려 1990년대는 풀뿌리민주주의의 부활과 함께 시작됐다. 1961년 5.16 쿠테타 직후 해산된 지방의회는 1990년 12월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30년만에 부활된다. 1991년 3월 26일 지방의원 선출을 위한 초대 강진군의회 의원선거가 실시됐다. 강진군에서는 의원정수가 11명 배정됐다. 입후보숫자는 26명으로 2.4대1의 평균 경쟁률을 보였다.강진읍에서는 윤옥윤 후보와 양태홍 후보 두 명이 출마했다. 개표결과 윤옥윤 후보가 4,888표를 얻어 2,944표를 획득한 양태홍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윤의원은 이같은 기세를 이어가 초대 군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초대 군의원 선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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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2.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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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 땜질공사… 근본적인 해결책 찾아야그동안 수차례 빙판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받아온 강진읍~도암 계라리간 4차선 도로에서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교통사고가 발생했다.지난 15일 오전 6시 40분께 도암면 덕서리의 대산주유소 인근 도로에서 계라교차로 방면으로 신모(57)씨가 몰던 군내버스가 권모씨(66)가 운전하던 스타렉스 승합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합차에 타고 있던 박모(74)씨가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고 운전자 권씨를 비롯한 10명은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당해 강진의료원과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스타렉스 차량에 타고 있던 숨진 박 씨를 비롯한 10명은 대부분 강진읍과 군동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해남군 산이면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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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02.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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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후반 폐쇄, 1992년 볼링장으로 변신많은 강진 사람들의 추억속에 생생한 강진극장은 80년대 후반에 문을 닫았다. 정확한 날짜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건물만 있다가 1992년에 볼링장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진극장은 1962년 7월 31일에 문을 열었다. 강진극장 건립은 처음에 강진읍사무소가 주도해서 시작된 일이였다고 한다. 강진경찰서 아래에 강진공회당이란 공공건물이 있었는데 당시까지는 모든 영화상영이나 옥내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다가 점점 인구가 늘어나고 건물이 노후 되면서 강진읍사무소가 극장건립을 추진했던 것이다. 강진읍사무소가 발주를 해서 광주의 남도건설이 건물공사를 맡았다. 그런데 이 회사가 중간에 부도가 나면서 공사가 한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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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6.02.0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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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유흥문화 주름 잡았던 강진 엠파이어, 야광, 미드웨이, 월드 성업이웃 장흥, 완도, 해남서도 원정 와... 한국유리 직원, 방위병들‘들썩들썩’강진읍 동성리 일대는 학생들 자취방 빼곡지금은 엠파이어클럽 한 곳 명맥 유지 80년대 강진의 문화를 거론할 때 유흥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유리 강진광업소가 80년대 들어 직원이 120명까지 늘어나고, 해태유업 강진공장이 역시 가동되면서 강진은 매월 정기적으로 현금이 유입되는 지역으로 변했다. 가을철 벼수매나 여름철 보리수매때나 현금이 돌던것과 완전히 상황이 바뀐 것이다.한국유리에 근무했던 한 주민은 “강진읍의 술집이나 식당에서 한국유리 직원이라고 하면 외상을 주지 않은 곳이 없었다”며 “매월 11일 월급날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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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2.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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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룡산아래 수양, 월하마을 자리틀어 빼어난 풍광탓에 귀농·귀촌인 증가덕룡산 중턱 규사채취로 훼손 아쉬워, 수양, 월하 주민들 분진피해 호소 영수마을과 어관마을을 지난 군계는 본격적으로 주작산 서쪽능선을 따라간다. 군계가 지나가는 주작산 능선을 따라가면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주작산휴양림을 만날 수 있다. 주작산휴양림은 주작산자락과 덕룡산 자락이 이어지는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이 곳에 오르면 두 산의 멋진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주작산휴양림에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도 날씨가 좋은 날에는 강진만 바다까지 한눈에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 관광객들과 등산객들의 방문도 이어진다.빼어난 풍경 자랑하는 수양마을군계가 따라가는 주작산과 덕룡산이 만나는 곳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고
심층취재
오기안 기자
2016.02.04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