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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마치 헬기소리 같아, 밤잠 못이뤄” 최근 서리방지를 위해 설치되는 방상팬으로 인한 소음문제가 주민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지역내에서 성전면 월남리 일원은 드넓은 녹차밭이 월출산과 어우러져 경관이 좋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푸른 녹차밭 사이 곳곳에는 새순이 나는 시기에 서리로 인한 냉해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상팬이 설치돼 있다. 10만여평의 부지에 200개가 넘는 팬이 설치돼 있어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다. 문제는 이 팬을 가동하는 시기에 소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녹차밭 주위에는 안운마을과 월남마을 등 여러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 녹차밭은 (주)장원에서 운영 관리하고 있는 곳으로 지난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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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7.02.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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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할 강(康)과 나루 진(津)이 만나 康津을 만들다2017년은 강진지명 탄생 600주년, 전라병영성 축성 600주년, 경세유표 저술 200주년, 고려청자 재현 성공 40주년 기념이 되는 해이다. 강진군은 이를 기념해 지난해 5월, 2017년을 강진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그 역사적 의미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도강현+탐진현=강진현 탄생전라병영 이설, 국가산단 설치격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인 1417년(조선 태종 17), 강진은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역대급 변화였다. 주(主) 현(縣)이었던 도강군과 장흥부에 속해 있던 탐진현을 합해서 하나의 행정 구역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의 완도 고금, 약산, 신지, 청산도가 포함된 큰 면적이었다. 그 이름이 바로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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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2.2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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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가뭄으로 고향 떠나 제주로 이주가뭄은 농업뿐만 아니라 제조업에도 영향미쳐 갑자기 태풍이라도 불어 몇일씩 배가 묶여버리면 벽파진은 그야말로 사람의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벽파진에 오면 바로 제주행 배에 올라탈 요량으로 음식이나 여비를 준비해 온 사람들이 며칠씩 발이 묶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처지가 됐다. 사람이 많으면 돈이 있어도 잠을 잘 방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너댓평 남짓의 여인숙방에 30~40명의 손님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방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좁은 의자에서 몸을 움츠리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다반사였다. 강진사람들이 벽파진으로 갈 때는 배를 타고 가기도 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장흥이나 강진에서 출발하는 배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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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2.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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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제주 노선 1955년 첫 취항가야호, 안성호 등 여러 척 배 운행 제주상공회의소가 지난 2000년 발행한 ‘제주상의 육십오전사’에는 당시 목포~제주노선에 투입된 배의 이름과 사진들이 실려있다.가장 먼저 취항한 것은 1955년 1월 8일부터 항해를 시작한 황영호였다. 그 다음으로는 1958년 9월 6일 화양호가 운항을 시작했다. 제주일보 58년 9월 5일자에는 화양호가 제주~목포간을 취항한다는 기사가 게재돼 있다. 또 역시 제주상공회의소 자료에는 63년 8월 13일에 가야호가 선을 보였다. 지금 제주에 생존해 있는 전남사람들은 가야호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60년대 중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면서 상당수 전남사람들이 이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왔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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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2.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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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은 월급받기 위해 표류기 작성폐쇄된 조선을 서양에 최초로 알려 하멜일행은 네덜란드에 돌아가서도 같은 요구를 했으나 대답은 ‘밀린 월급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작성한게 ‘하멜표류기’다. 조선에서 억류과정을 소상하게 밝혀 월급을 받는데 유리한 자료를 제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하멜일행은 암스테르담 동인도회사 본사에서 하사금형태의 2년치 월급을 받는데 그쳤다고 기록이 전해 온다.하멜의 표류기는 원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 책은 ‘폐쇄된 조선’을 서양에 알린 최초의 책으로 기록되며 오늘날까지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하멜표류기’가 없었다면 하멜의 행적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에서나 몇 줄 보게되는 작은 역사로 남게 됐을 것이다.1666년 하멜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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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2.0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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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표류로 인해 해양 문학탄생 계기제주 장한철의 사건이 표류기 탄생 다음날 아침 일찍 섬의 서쪽 해변으로 갔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곧장 올라가면 강진이 나온다. 반대로 강진쪽에서 바람을 타고 표류하면 곧바로 이곳으로 떠내려 온다. 인터넷 검색프로그램인 구글어스에서 길이를 측정해 보니 직선거리로 276㎞이다. 육지로 따져 보면 강진~충남 천안 정도의 거리다.하멜이 1666년 9월 4일 밤 여수를 탈출해 오도열도에 도착한 시점이 이틀 후인 것을 감안하면 한반도 서남부에서 이곳 오도열도까지 표류하는데 2~3일이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변은 영락없는 제주도의 그것이었다. 날카롭고 시커먼 현무암들이 해변에 꽉차 있었다.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마치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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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1.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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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전 구석기시대 유물 출토한반도 남부지방과 유사성 발견 안내원에게 나가사키 항구가 보이는 가장 높은 지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올라가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서북쪽을 향하여 한국으로 오가는 뱃길이 아스라이 열려 있었다.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적 차이 중 가장 큰 하나는 장례문화이다. 우리나라는 매장문화가 많지만 일본은 화장문화가 완전히 뿌리내려 있다. 일본에서는 조상들의 납골을 모시는 비석들이 마을 안에 있다. 그런데 나가사키현의 오지카정이라는 인구 3천여 명의 작은 섬에는 마을이 아니라 산위에 묘가 있다. 그것도 납골을 안치한 비석이 아니라 둥그런 분묘를 하고 있다. 전해지는 말과 모양으로 봐서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의 묘지였다. 한반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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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1.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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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볼트 강진사람들 만남 소감 글로 남겨지적수준이 높다 등 긍정적 평가 대부분 다시 지볼트의 기록으로 돌아와 이제 강진사람들을 만나보자.■ 김치윤(金致潤)지볼트는 김치윤이 학자이면서 진정한 한국민족의 골상(骨相)을 지닌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김치윤은 지볼트가 일행 중에서 누가 가장 서민적인 모습이냐고 묻자 스스로를 꼽으면서도 자신이 신분이 높은 계급의 전형이라고 뽐내는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지볼트는 김치윤이 학자이면서 선생(훈장)이어서 꽤 꼼꼼하게 보인다고 했다.김치윤은 지볼트에게 천자문을 선물하고 한시를 적어주었다. 한시 옆에는 한글을 적어 지볼트가 한국문자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허사첨(許士瞻)상인(商人)이다. 지볼트는 허사첨이 오늘의 불행을 깡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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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1.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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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관리 도움으로 강진사람 만나표류인들은 언어, 지리 등 정보제공 고영근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19세기 중엽 이후 서양선박들의 한반도 연안 출몰이 잦아지고 1880년대 들어와서 서양과 수교가 가능해진 것도 지볼트의 한국기술이 큰 디딤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지볼트의 저술을 접한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이미지와 국내실정을 파악하고 적극적인 접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지볼트와 강진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렇듯 큰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지볼트 저서의 이같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한국내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고영근 교수는 “지볼트의 한국기록은 그것이 서양사회에 미친 영향에 비하면 언어학적 업적 외에 거의 주목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볼트에 대해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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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0.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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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도만 보고 가는 사람들 많아, 주말과 휴일 운행하면 좋을 듯 최근 강진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가우도와 마량항을 연결하는 배를 운행해 연계효과를 높이자는 의견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가우도는 지난 7월까지 35만명을 넘어섰으며 주말이면 수 천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평일날에도 버스 방문이 이어지며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마량항도 매주 토요일이면 놀토수산시장이 열려 다양한 공연과 함께 고품질의 수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바로 이 두 곳을 연결하는 철선이나 소형 유람선같은 배를 띄워 관광효과를 극대화 시키자는 것이다.가우도의 경우 관광버스 기사를 비롯해서 타 지역주민들에게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 강진을 방문하면 꼭 들러야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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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10.1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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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남, 영암 거쳐 한양으로 압송강진 병영면에서 억류생활하다 탈출 조선시대 박제가와 함께 북학(北學)4가로 꼽히는 이덕무의 기록에 따르면 스페르베르호의 길이는 91m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당히 큰 배다. 넓이는 18m에 달하고, 배의 두께는 0.6m인 1천톤급의 배였다.놀랍게도 당시 네달란드의 다국적 무역회사 동인도회사는 이같은 배를 1천500척이나 소유하고 있었고, 하멜의 목적지였던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상관에는 1641년부터 1847년까지 606척의 동인도 선박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기까지 제주도 남쪽 바다를 이용한 일본과 서양의 교류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고, 스페르베르호는 이중의 한 척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멜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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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10.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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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역 등 외부 전시품도 하자 투성이 지금으로부터 약 1천여년 전 고려시대 때 강진의 도공들은 중국, 일본과는 달리 상감기술과 아름다운 비색빛의 청자를 만들어냈다. 어느 나라도 모방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청자가 쇠퇴한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강진의 고려청자는 재현하려는 강진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고려청자박물관과 각종 개인요 업체에서 청자를 생산해 강진군은 명실상부 청자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고려시대 청자를 재현해내고 있는 고려청자박물관에서 만들어낸 청자의 일부 제품들이 균열, 즉 빙열현상이 발견된 제품이 잇따라 발견돼 청자의 명성을 실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지난 3일 찾아간 나주역.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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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10.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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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단위와 고금지역 주민들 유입되기도신규 도로 개설로 낡은 주택 사라져수요급증, 가격 상승 원인으로 지목 요즘 강진에는 아파트, 빌라, 원룸 등 주택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여기에 강진읍 동성리에 150세대 규모의 공공임대주택 신축 계획까지 발표되면서 주민들의 관심이 아파트 분양에 집중되고 있다.최근 강진에는 아파트가 2곳에서 신축되고 있거나 올해 내로 공사가 진행될 예정으로 총 117세대가 입주하게 되며 연립주택의 경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7개소가 신축돼 총 136세대가 입주했다. 또 다세대 주택의 경우에는 2개소 16세대가 분양돼 총 269세대가 입주를 했거나 분양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1세대당 3인가족으로 계산하면 옴천면의 인구인 800여명이 살수 있는 주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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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09.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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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피난민들 3개월간 거문도 생활차종채씨 피난민들에게 식량 나눠줘 한참을 그러고 있을 때 멀리서 청산도를 지키는 경비선이 다가왔다. 우리 배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구하러 왔던 것이다. 그날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배는 청산도 대서리 포구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그러나 청산도에서 닻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인민군이 곧 청산도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다음날 바다가 잔잔해지자 피난선은 간단한 수선을 끝낸 후 다시 거문도를 향해야 했다. 피난민들은 극도의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어차피 청산도에 남아도 죽을 몸이어서 다른 곳으로 피난을 해야 하지만, 하루 전 생사를 넘나 들었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생각에 말문이 막혀 있었다.다행히 태풍은 불지 않았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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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9.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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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경주에서는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나 집이 흔들리고 기와집의 기와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럼 우리 강진에서는 이와같은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역사의 기록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강진이나 또는 바로 인근지역이 진앙지가 되어 규모 5.8 안팎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강진에서 일어난 공식적인 지진기록이 17건이나 보인다. 명종(1534~1567) 때 4건의 지진이 있었고 중종(1488~1544)과 세종(1397~ 1450), 현종(1641~1674)때도 각각 3건과 2건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과학적인 지진측정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진앙지가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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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9.2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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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중에는 군청건물 지진취약 경북 경주에서 잇따라 강한 지진이 발생하면서 강진에서도 흔들림이 관측됐다. 이에 주민들은 내진설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지난 12일 경북 경주 남남서쪽 8~9㎞ 지점에서 40여분의 시간차이를 두고 규모 5.1과 5.8의 강한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경주시와 경북 일대에서는 건물의 벽이 갈라지고 지붕의 기와가 떨어져 사람이 다치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국내 관측이래 가장 강한 지진이었던 지난 12일 지진은 강진에서도 3.0~3.9정도의 흔들림이 강진군의 측정장비에 감지됐다. 이 수치는 지난 5월 작천면 야동마을 인근 야산에서 발생했던 2.5 규모의 지전보다 훨씬 강한 수준으로 가옥의 문과 창문이 흔들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흔들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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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16.09.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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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비가 들지 않았던 풍선은 바람에 뒤집혀선원들 월급제 발동선보다 풍선을 더 선호해 발동선에 비해 풍선은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단점이 있을 뿐, 연료비가 전혀 들지도 않았고, 고장도 없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화물을 싣고 전국 어느 포구에나 들어갈 수 있어 다도해를 끼고 있는 우리나라 해안구조상 가장 알맞은 배였다.선원들의 급여 지급 방식도 달랐다. 발동선을 타면 급여가 월급으로 나왔다. 그러나 풍선은 주인과 갈라먹기를 했다. 100만원어치 쌀을 가지고 가서 200만원을 벌어오면 원금을 떼고 남은 100만원 중에서 50만원은 주인이 가져가고 나머지 50만원은 배를 타고 간 사람들이 경력과 직책에 따라 골고루 나눠 가졌다. 이 때문에 당시 선원들은 풍선타기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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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9.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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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구멍이 송송, 나무쐐기 박아 절개옛날옛적 석공들의 숨결 들려 오는듯오래된 사찰이나 건물을 보면 거대한 기단석을 사용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큰 돌을 다듬어 건물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그 큰 돌을 어디서 어떻게 다듬어서, 이떻게 이동해 왔을까하는 것은 늘 궁금증의 대상이다. 이 궁금증을 풀어줄 유적이 발견됐다. 월출산 자락에 있는 백운동 정원. 조선중기 이담로(1627~1701)가 만든 일종의 별장으로 초의선사의 ‘백운동도’라는 그림이 유명한 정원이다. 이곳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계곡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수풀이 우거진 기슭에 커다란 돌기둥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대석이라 불리우는 이 돌들은 길이가 4m가 넘는 것도 있다. 언뜻 보면 옛 집터처럼 보여서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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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9.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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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목포 오가는 배 매일 들락거려상선과 상인들 몰려 경제활동 중심지 역할 1930년대는 일제치하로 강진땅은 일본으로 보내어지는 곡물의 집결지로서 그 피폐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굶주리는 것이 다반사였고, 일본인들의 앞에서 굽신거리며 못난 삶들을 하루하루 이어 나갔다. 비록 쌀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그림의 떡이었고, 그나마 형편이 나은 집에서도 서석이나 두류들이 전부였다.백금포는 그런 역사 흐름의 중심지였다. 자본축적이 진행되고 해상항로를 통한 상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내륙 깊숙한 곳에 형성돼 있는 백금포는 육지의 산물을 밖으로 실어나르기에는 최적의 포구였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던 영포(백금포)의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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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9.0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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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에 저장된 추자멸젓 뱃길 이용 거래돼항해도중 풍랑만나 위험한 고비 넘기기 일쑤 제주와 완도 사이의 해역에서 그런 돌풍에 얼마나 많은 배들이 희생 됐을까. 바다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 조용히 일렁거리고 있었다. 동서로 이어지는 보길도와 추자도 사이의 항로는 부산~목포, 부산~인천 등을 잇는 최단거리 지점이다. 또 소안도와 보길도를 지나 진도 앞 병풍도를 거쳐 흑산도로 빠져나가면 곧바로 중국 대련과 하루 24시간 수백척의 상선들이 통과하는 곳이다. 완도에서 3시간 동안 배를 타고 항해한 끝에 추자도에 도착했다. 그리웠던 섬이다. 이 섬에서 나오는 멸젓은 왜 그리 맛이 있었길래 망망대해 건너와 강진사람들을 사로잡았을까. 당시 강진의 남포를 오갔던 왕년의 상인들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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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6.08.26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