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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살인사건이 1974년 갈갈이 사건으로 둔갑’치정에 의한 단순살인사건, 작가의 상상력으로 풍선만들어야화수준의 방송이 사실처럼 전달… 강진의 이미지 심각하게 왜곡 강진갈갈이 사건이 법창야화 제1화로 방송된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40대 후반 이상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직도 ‘강진=갈갈이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건의 발생시기나 사건내용, 방송전달과정등에서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였다. 이 사건은 사건이 사건이 아니라 법창야화 1호가 된 것 자체가 사건이라고 해석해야 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1974년 4월, 저녁 10시가 되면 전국의 거리가 조용해졌다.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있을 때였지만 사람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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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2.0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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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강진, 청자제작 부분 세계 최고기술 보유 남과 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개성 만월대에서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1377년 간행)보다 앞서는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출토돼 관심을 끌고 있다. 개성 만월대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919년 개성 송악산 기슭에 건설한 궁궐의 터.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됐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2007년부터 남북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 조사를 시작해 올해 제7차 발굴 조사가 진행됐다.이 금속활자는 만월대가 소실된 1361년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실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 금속활자는 남북에 각각 1점씩뿐인 데다 발굴 경위와 출토지가 명확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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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2.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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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승용차, 사람 뒤범벅자전거통학생들 큰 위험 노출 “자전거 도로는 울퉁불퉁” 지난달 30일 오전 7시 50분 강진읍 동성리 동초등학교 4거리. 빨간불이 켜지자 좁은 도로에 신호대기하는 차량들과 등교하는 강진중학생들의 자전거, 도보로 등교하는 학생들로 뒤범벅이 됐다. 인도쪽도 학생들과 자전거들이 일시 정지하면서 뒤섞여 인도인지 자전거도로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신호대기중인 차량들의 뒷쪽에서는 학생들이 탄 자전거들이 신호등쪽으로 가까이 붙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 일제히 몰려오고 있었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자동차와 자전거들이 일제히 뒤섞여 움직였다. 승용차 옆에 바짝 달라붙어 따라가는 자전거, 오른쪽 인도쪽에 붙어서 차량을 쫓아가는 자전거, 중앙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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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2.0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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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동 후보 도왔으나 길전식, 윤재명 당선성전면 오산마을 김오동(78) 어르신은 1978년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현역이던 황호동 국회의원의 투표소 참관인으로 등록하면서 처음 선거운동에 발을 디뎠다. 그의 나이 41세때였다. 다른 사람에 비해 늦깎이 입문이였지만 활약은 대단했다. 고향에서 터를 잡고 살며 주변사람들과 끈끈하게 다져놓은 친화력 덕분에 재선에 도전한 황호동 후보가 성전지역 득표율을 올리는데 상당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아깝게도 황후보는 길전식․ 윤재명 후보에게 패해 정치권을 떠났다.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한당 후보였던 영암출신 유재희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다. 집안 친척뻘 되는 유후보를 도와야 한다는 권유로 영암과 강진을 오가며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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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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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윤재명·유수현·박종면 입후보… 윤재명 당선9대 길전식·정간용·황호동 입후보… 길전식 황호동 금배지10대 길전식·황호동·오석보 윤재명·이선동·이정채·최수영 입후보… 길전식 윤재명 승리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8대, 9대. 10대 국회의원 선거 등 세 번의 총선이 치러졌다. 50대 이상 주민들이라면 1년 365일 동안 방 한켠의 벽에 붙어 있던 국회의원 얼굴이 들어간 달력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때 이름을 날린 국회의원이 윤재명, 황호동, 길전식씨등이다. 이 세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70년대 강진의 정치를 풍미했다. □제8대 국회(1971.7.1 ~ 1972.10.17)8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진은 영암과 함께 전남 제13선거구로 분류됐다. 총선에 출마한 후보는 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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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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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출마 마량(馬梁)거쳐 한양 운송 고려시대 학자 익재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익재난고(益齋亂藁)’에 실려 전하고 있는 한시가 있다. 경주이씨인 익재선생은 강진과 친숙한 인물인데, 강진에 살던 경주이씨 효정공 이경이 익재공이 한때 강진을 들려가며 읊은 시가 있는 것을 근거로 사우를 건립해 현재 대구면 구수리 귀곡사에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익재난고’에 따르면 제주도인들은 생산되는 농산물이 적어 육지인 전라도지방에서 상인들이 청자와 쌀을 팔러오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배가 자주 온게 아니여서 오랫동안 배가 오지 않을 때는 북풍이 불어 보내는 이 장사꾼 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곤 했다.그런데 관의 말들이 논밭을 짓밟아 백성들은 경작할 땅조차 없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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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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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부지 절대부족 집짓기 하늘의 별따기 강진에서 직장을 구해 최근 강진읍에 원룸을 얻으려고 했던 광주광역시의 A씨는 깜짝 놀랐다. 부동산을 통해 방값을 알아봤더니 원룸 풀옵션 가격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 40만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광주 도심의 최신식 원룸가격 보다 훨씬 비싼 수준이였다. A씨는 부동산으로부터 “그 가격에도 지금은 방이 없으니 연말에 인사철이 지나면 그때 다시 연락을 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최근 강진읍내에 다가구 주택을 지어보려고 집터를 알아봤던 B씨는 최근 이 계획을 포기했다. 기관이 밀집돼 있는 강진읍 서성리와 평동리 쪽에 터를 알아 봤으나 주택용지 자체를 구할 수 없었다. 조각땅들이 있었으나 도로변은 평당 100만원이 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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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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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24일. 그날은 토요일이였다. 강진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관내 학생들이 모두 모여 강진군소년체전이란 큰 행사를 열고 있었다. 원래 이때는 제3회 금릉문화제와 군민의날 행사가 열려야 했지만 두 행사는 5월 10일에 실내행사로 치러지고 대신 야외행사는 강진군청소년체전이 열렸다. 봄날 상큼한 날씨와 함께 오전 10시 개막식이 시작됐다. 학생들이 각 학교별로 차례로 입장을 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마지막 성화대에 불을 점화하는 순서가 왔다. 시간은 10시 30분이 됐다. 한 학생이 큰 박수를 받으며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성화는 성공적으로 타올랐다. 그런데 10분정도가 지날 무렵, 성화가 꽝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순간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불꽃이 성화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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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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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6.25 전쟁을 거쳐 새마을운동까지 헌신 지역축제에서 전국의 관광객이 참여하는 축제로2009년부터 청자축제 명칭시작, 올해가 43회째금릉의 땅이 흙과 불이 어울어져 비상 7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으로 일정한 경제력을 갖게된 사람들은 문화를 챙기고 축제를 찾았다. 강진에서는 1973년 금릉문화제란 지역축제가 시작된다. 금릉은 옛 강진의 이름이다. 이날은 온 군민이 모여 체육행사와 민속놀이를 즐겼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60년대 가난했던 시절에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강진군민의 날 행사는 1973년 5월 ‘군민의 날 및 금릉문화제’란 이름으로 첫 행사가 열렸다. 1973년 당시 강진의 인구가 11만명이 넘었다. 이때 군민의 날 및 금릉문화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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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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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철제이기선 손진기성회’결성 철도유치운동 일제강점기인 1923년 11월, 조선총독부는 남해안지역에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총독부소속 철도공무과장을 필두로 철도선로 조사를 시작한다. 일행들은 경성을 출발해 배를 타고 마산에 도착한 다음 남해안 일대를 차근차근 돌았다. 이들은 마산에서 시작해 진주, 하동, 순천, 벌교, 보성까지 온 다음 화순의 능주로 올라가 화순까지 둘러봤다. 조사단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보성에서부터 장흥, 수문포, 강진, 영산포, 용당, 목포까지 잇는 지역을 조사하고 총독부로 복귀했다. 당시 동아일보 1923년 12월 2일자 기사에는 이들이 11월 25일부터 12월 13일까지 한달여 동안 선로조사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이 기록이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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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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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안경비단과 강진군, 강진농협통합RPC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제주도에 정기적으로 쌀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강진과 제주도의 쌀 인연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때는 강진이 제주도의 가장 큰 쌀 시장이였다. 인근 해남이나 장흥, 완도등은 70년대들어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대규모 농지가 생긴 곳이다. 1900년대 들어서도 군동 호계리 백금포에서 제주시나 서귀포로 쌀을 팔러 가기 위해 쉴새없이 배가 움직였다. 추자도 사람들도 70년대 후반까지 강진읍 남포마을과 멸젓을 거래하면서 쌀을 구입해 갔다. 조선시대, 강진에는 전라병영성이란 거대한 물류기지가 있어서 제주사람들이 나오면 쌀 뿐 아니라 다양한 공산품을 구입해 갈 수 있었다. 특히 전라병영에서 정기적으로 제주도에 파견근무를 시키는 병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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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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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은 농협등 통해 20~30억원대 판매두 지역 지리적, 역사적으로 큰 인연 강진쌀, 제주도 시장 집중 공략 필요 인구 63만명. 연간 관광객수 1,200만명.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지역, 제2공항이 들어서는 섬... 강진의 남쪽 섬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라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이러한 제주도에 특이한 산업구조가 하나 있다. 쌀 산업이다. 농림부의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의 2015년 예상 쌀 생산량은 444톤이다. 반면에 연간 제주도민들이 소비하는 쌀의 양은 4만1천여톤에 이른다. 여기에 올해 방문객 수가 총 1,2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관광객들이 있다. 관광객이 연간 제주도에서 소비하는 쌀만 수치상으로 낮게 잡아도 50만톤이 넘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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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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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는 1953년부터 1994년까지 매주 대한민국 정부가 제작하여 영화관에서 상영했던 영상 보도물이다. 이 대한뉴스의 제1171호가 바로 강진에서 청자를 재현하는 소식을 전했다. 1978년 2월 10일에 제작한 것이다. 대한뉴스의 소재가 됐다는 것은 청자재현이 그만큼 국가적으로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화면은 칼라로 제작됐는데, 당시 조기정 선생과 이용희 선생의 젊었을 적 모습과, 강진요의 초창기 모습, 대구면 일대의 정리되지 않은 논경지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당시 대한뉴스의 원고를 그대로 옮겨보면 내용이 이렇다.‘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옛 고려인들이 신비에 쌓인 고려청자를 구워내던 곳인데, 이번에 600년만에 이곳에서 고려청자가 재현됐습니다. 도예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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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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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부터 청자재현 작업 시작해방후 경기도 이천, 광주 청자재현 시도유약개발 미미한 수준1978년 강진청자 재현 성공 후 본격화당시 청자재현은 전국적으로 어느정도 진행되고 있었을까. 고려청자 재현의 몸부림은 일제강점기때부터 있었다. 일본은 한국에서 수집된 청자편등을 분석해 이 기술을 본국으로 가져가 오사카 주변에서 상당한 수준의 청자를 재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우리 도공들이 경기도 이천과 여주등지에 모여 창자를 굽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청자 재현의 역사는 해방과 함께 비롯된 셈이다. 도예가 혜강 유근형 선생과 지순탁 선생등의 경우 일제강점기부터 청자재현을 시도했던 사람들인데 이천과 여주에서 자리를 잡고 해방후에도 청자 연구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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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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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2월 전국을 흥분케 했던 강진의 청자 재현‘600년간 긴 세월 동면한 한국혼을 세상에 빛낸 일’본격적인 비색청자 재현 도전 첫발“앞으로 절대 불이 꺼지는 일 없어야” 1978년 2월 3일은 강진군과 강진군민들에게 역사적인 날이였다. 600여년만에 재현을 시도한 청자가마에서 첫 성공작품이 나온 날이 바로 그날이다. 강진군청 성상원 문화공보과장은 성공작품이 나온 다음달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 문화공보부장관에게 재현에 성공한 고려청자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바로 6개월 전인 1977년 6월, 대구면 사당리에서 열린 청자요 기공식때 김성진 문화공보부장관과 김성룡 문화재관리국장이 다녀갔기 때문에 당연히 문화공보부을 찾았던 것이다. 성과장은 “덕분에 역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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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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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실학연구원 제16회 학술대회 발표 오늘날 각 자치단체는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지역을 조금이라도 더 부각시킬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가 실현되는 기반 만들기 즉, 지역을 살아있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공동체로 기능하도록 되살리는 몸짓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앞으로 이러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결국 그같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고유의 지역성을 바탕으로 한 어떤 특징을 부각’시키지 않으면 안될 상황들을 맞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지역학이란 분야를 정립해 보고 그속에서 강진학의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는 학술심포지엄이 지난 6일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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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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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70%, 높이 35m 주탑 공사 한창다리 길이 111m, 국내서 가장 길어내년6월 완공, 강진의 새 명물‘꿈틀’ 지난 12일 오전 도암면 석문공원 인근 구름다리 공사현장. 초대형 크레인 두 대가 구름다리의 골격을 형성할 양쪽 주탑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주탑 하나의 높이는 35m에 달하고 무게만 133톤 짜리 초대형 구조물이였다. 그동안 바위틈을 깎아 기초를 만든데 이어 이번에 그 기초에 주탑을 세운 것이다.3시간에 걸쳐 진행된 주탑세우기 공사가 마무리 되자 구름다리의 위용을 가늠할 수 있는 철탑이 양쪽에 우쭉 섰다. 철탑의 위용이 주변 기암절벽과 어울어져 마치 살아 움직이는듯 하는 분위기였다. 철 구조물에서 다리 현판이 연결될 위치도 아주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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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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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 10일 차가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날 50대 중반의 신사가 김포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강진읍 출신 아남산업 김향수 회장이였다. 김회장은 찬바람을 맞으며 바로 몇 달전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박정희 대통령이 일부 대기업 사장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김향수 회장도 초대를 받았다. 박대통령은 김회장에서 이례적으로 전자산업과 고려자기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도자기산업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박대통령도 1964년부터 강진에서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청자요지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김향수회장은 전자산업과 고려자기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박대통령은 일본이 임진왜란때 우리나라 도공들을 납치해서 세계도자기 시장의 70%를 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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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0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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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고려청자재현위원회 출범‘웅비의 날개 시작’‘강진도요지 고려청자를 재현해 다시한번 한국인의 예술성을 전 세계에 자랑하자’다짐 1976년 11월 어느날이다. 강진지역 시민단체였던 ‘밀알회’가 작은 초청강연을 열었다. 초청강사는 도예가 조기정씨였다. 조선생은 강진에서 청자요지 발굴작업이 10여년간 계속되고 있을 때 광주 무등요에서 17년간 실제 청자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 도자 전문가였다. 훗날 광주광역시 지방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으며 일본과 국내의 도요지를 누비며 평생을 고려청자 재현과 강진청자사업소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강연 제목은 ‘고려청자와 강진’이였다. 그의 연설중에 강진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 대목이 있었다. ‘일본이 임진란때에 우리나라 도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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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5.11.0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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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역사 난중일기에 지나치게 의존김억추장군등 호남사람들 활약상 많이 묻혀전남중심의 임진왜란 투쟁사 다시써야 정유재란과 호남, 그리고 강진하태규(전북대학교 교수)임진왜란기 호남은 적의 침략을 막아내고 지켜냄으로서 풍신수길의 조선 정복야욕을 꺾어버리고 조선을 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은 명과의 강화교섭을 통하여 조선의 남부 4도의 지배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강화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풍신수길은 정유재란을 일으켜 전라도를 빠짐없이 점령하고 나아가 조선의 충청도 경기도로 북상하고자 하였다.재침 이후 경상도 지방에서 소극적인 활동을 보이던 왜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무너진 이후 12만 여 명을 동원하여 전라도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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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5.11.05 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