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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시절 소고기 값 안정화를 위해 82년부터 외국소인 붉은색 바탕에 발목 등에 흰색의 털을 가진 헤어포드(헤리퍼드)와 흰색의 털을 가진 샤로레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최초에 들어온 소는 호주산으로 약 2,500두에 달했다.강진에서도 육우가 82년도에 232두, 83년도에 279두, 84년도에 102두가 입식 되었다. 처음 입식 때인 82년도에는 입식을 희망하는 농민들이 많아 군 자체로 심사를 하여 분배해야할 정도로 인기였다.많은 꿈을 갖고 입식하게 된 도입육우들은 처음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심했던 것이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1.03.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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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문화역사 새로 쓴 윤순학 전 실장대구 단풍나무부터 금곡사 중창과정까지2019년부터 1년 6개월간 69회 연재강진사람들의 흔적 찾아간 대장정 마무리1회분 자료조사에만 1달정도 시간 소요지역의 역사, 문화이야기 재미있게 풀어내2019년 1월 시작됐던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첫 번째 인물이었던 윤순학 전 기획홍보실장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이야기가 69화를 끝으로 연재가 마무리됐다.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강진에서 각 분야에 종사하면서 그 일의 변화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여러 가지 뒷이야기나 자신의 경험을 전하기 위해 기획됐던 코너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6.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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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세존사리 32과(顆)가 모셔져 있는 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632~647) 밀봉(密奉)스님이 창건 성문사(城門寺)라 했다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 불우(佛宇)조에 보은산 금곡사(金谷寺)로 나온 것을 보면 어느 시기에 명칭이 바꾸어지는지 알 수 없다.금곡사 경내에는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829호로 지정된 금곡사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오층이었으나 삼층만 남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을 잃었다. 1988년 6월10일 해체복원 과정에서 세존사리 32과(顆)가 발견되어 학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6.1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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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중국 용천시에 이어 세 번째 국제자매결연 도시는 일본국 하사미정이다.하사미정과 자매결연은 부산관광협회장을 지낸 군동출신 고광철 향우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일본과의 관광교류 활성화를 위해 양국을 오가며 헌신해온 인물이다.고 회장은 큐슈지방 나가사키 등 여러 도시를 왕래하면서 하사미정에 도예 부흥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조선시대 강진현 이우경 도공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그는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부산관광협회 사무실에서 강진군 관계자와 사전협의를 갖는 자리에서 일본의 도자기 고장과 교류를 통해 강진 도자 발전을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6.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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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봄 신안군 증도면 도덕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의 그물에 청자꽃병이 인양됐다.이 배는 1323년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출항하던 중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이었다. 발굴된 청자는 중국 원나라 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로 확인됐다.1995년 7월1일 민선1기 강진군수가 취임하면서 지역에 산재돼 있는 민간요 업체를 한 곳에 집단화 시키는 청자촌 조성사업이 본격 시작됐다.청자산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1996년 청자를 소재로 제1회 청자문화제를 개최해 국내에 알리는데 초점을 두었다.이와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5.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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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1일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1996년 12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9번째 정회원국이 됐다. 이런 흐름에 지방자치단체도 국제교류를 통한 협력을 통해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인적 물적 교류를 필요성이 대두되었다.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국제도시간 자매결연이다. 국제도시간 자매결연은 2003년 이전까지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받아 추진해야 했다.그러나 2004년 1월 규정이 폐지되어 자매결연 추진은 자치단체의 고유한 권한으로 독자적인 판단아래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 추진할 수 있게 되었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5.2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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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강진군도 예외일 수는 없다. 1965년 127,878명이었던 강진인구가 2019년 35,286명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예부터 인구는 우리지역의 성씨의 분포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우리나라 성씨에 관해 송나라 신당서에 신라의 왕성(王姓)은 金이다. 귀인의 성은 朴이며, 백성의 이름은 있으되 氏는 없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이렇듯 성씨가 없었던 지방의 유력자 층에게도 고려 초기에 남자 혈통을 나타내는 중국식 성씨제도가 확산되었고, 국가는 이를 통해 백성의 신원을 파악하고 운영하는 제도로 활용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5.1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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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말 현재 강진군에 등록된 차량은 19,601대이다. 거리에 차로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강진에서 처음 자동차를 구입해 탄 사람은 누구일까. 최초 강진의 자동차는 1921년 동화자동차부 오동준 사장의 7인승 포드차였다. 아마 이 차량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나 택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이때 강진의 도로는 강진읍~마량간 도로가 있었고 1908년 해남 우수영에서 마산간 도로가 새롭게 개설됐으며 이듬해인 1909년에는 강진읍~성전~영암~영산포간 도로 설치됐다. 강진~목포간 도로는 일제 강점기때 부설됐고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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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20.05.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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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7년 1월20일(태종17년) 정유년에 광산현에 있던 병마절제사영을 도강의 옛읍(현 병영)으로 옮기고, 도강현과 탐진현을 합쳐 강진현으로 정하여, 치소를 도강현의 송계(松溪 성전면 수양리 수암마을 부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강진군의 생일은 1월20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 강진의 인구는 얼마였을까?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 의하면 강진현 인구는 355호 1,644명, 軍丁29명, 營軍54명, 船軍 252명으로 총 1,979명이 살고 있었다. 이를 1789년 호구총수에 나타난 인구분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5.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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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작됐던 ‘내고향 사랑운동’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2005년말 인구통계가 42,828명으로 조사됐다. 이때부터 강진의 인구가 4만 명도 무너질 것이라는 절박감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인구늘리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강진군은 4만명을 유지하는 고육지책의 일환으로 2005년 10월 20일 신생아양육비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뒤이어 2007년 5월 21일에는 귀농, 귀어자에 대한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 조례는 출산을 장려함으로써 인구를 늘리고 전국에서 귀농열풍이 부는 것을 토대로 귀농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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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20.04.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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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진군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강진품애 살기’ 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강진품애(愛)살기 운동은 군청의 공직자가 먼저 솔선수범하며 강진에 거주하고, 관내 거주 주민 중 관외에 주소를 둔 주민에게 지속적으로 전입을 권장하는 운동이다.강진군의 인구 배가 운동의 역사는 약 20년 전인 2001년부터 시작됐다. 여러명의 군수가 바뀌면서 이름은 다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한 것은 같았다.강진군에서 추진한 최초 인구증가 운동은 2001년 추진한 고향사랑 운동이었다. 이후 인구배가 운동, 인구늘리기 운동, 내고장 주소갖기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4.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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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청자가 일본에 이어 미국 순회전시회까지 무사히 끝났다. 공직에서 퇴직한 요즘에도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그때만큼 힘들었던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40여년 공직생활 중 강진청자 미국 순회전시회는 준비에서부터 행사 개최까지 가혹하리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내가 가보지도 못한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고 관람객을 끌어모으기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을 전시회에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 개최도시 교포사회의 관심을 유발해야만 했다. 이는 홍보물을 발송하는 것이 최선의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4.1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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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워싱턴 D.C.를 시작으로 강진청자 미국 6개도시 순회전시회가 본격 시작됐다. 워싱턴과 뉴욕까지 장소섭외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전시회가 마무리됐다.다음 전시회 장소는 애틀랜타였다. 이 곳에서는 2008년 6월 9일부터 6월 13일까지 5일간 진행됐다. 애틀랜타 역사관에서 진행된 전시회에는 2,109명이 관람했다. 전시회에는 이광재 애틀랜타 영사와 닥터 에밀슨 에모리대학교 박물관장, 배명숙 에모리대학교 교수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전시회가 열린 애틀랜타는 1996년 하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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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안 기자
2020.04.0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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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강진 청자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시작했던 일본 순회전은 도쿄를 시작으로 나고야, 교토 등 일본 크고 작은 6개 도시를 돌며 고려청자박물관과 개인요에서 생산해낸 우수한 청자47점을 전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일본 순회 전시회네 내내 국내 주요 TV와 신문사 등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면서 강진청자가 전국에 홍보가 되는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일본 순회 전시회가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순회 전시회를 준비했다. 사실상 일본 순회 전시회는 미국 전시회를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나는 일본 6개도시 순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3.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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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31일부터 11월 5일까지 5박6일동안 치유의 숲과 유기농의 본고장 미야자키켄 아야죠, 도자기의 고장 아리타죠와 마시코죠, 카사마시 등을 둘러본 후 본격적으로 강진청자 일본순회전 준비에 돌입했다.나는 귀국후 순회전시 계획을 세웠다. 2007년도 군의회 정례회 본예산 심의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거치며 2억원의 예산이 확정됐다.일본순회전의 추진위원장으로 단국대학교 도예과 박종훈 교수를 선임했고 고문에 이용희 청자장과 조기정 청자장을 위촉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기정 청자장은 건강상의 문제로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3.2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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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독 청자와 관련된 업무를 많이 맡았다. 업무를 맡으며 강진청자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강진청자는 제작기법과 태토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됨으로써 그 명성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강진에서 생산하고 있는 청자의 태토는 점력이 풍부하고 내화도가 높으며 입도가 균일하고 철분 함량이 과다하지 않다. 이 때문에 두드리면 금속음이 나고 균열이 없으며 유색이 비취빛을 띄는 우수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강진군에서는 천년 전 도공들의 혼을 이어받아 청자산업을 지역경제의 얼굴산업으로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3.1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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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미숙 명예관장의 도움으로 강진군은 2010년 10월 18일 오석환 조선민화박물관장과 대구면 청자촌에 한국민화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을 골자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이후 2011년 7월 22일 한국민화박물관 기본계획 수립 용역과 전남도 투융자심사가 이뤄졌다. 이 심사이후 이 사업은 2012년도 문화체육관광부 국고보조사업으로 확정됐다.이제 사업이 2012년을 넘어가면서 또 다른 진통을 겪었다. 바로 민선5기 보궐선거가 이때 진행됐는데 박물관에 대한 재정적 부담이 선거당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이때 일각에서 제기했던 문제가 민화박물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3.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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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민화뮤지엄. 이제는 청자촌을 뛰어넘어 강진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성장했다.한국민화뮤지엄은 한국적 정서를 가진 민화 전시로 국내외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곳이다.특히 청자촌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청자박물관과 함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으로 연간 약 3만7천~4만여명이 방문하고 있다. 한국민화뮤지엄은 최근 청자촌에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워동력이 되고 있다.지난 2015년 5월 개관한 이후 개관 5년째가 되어가는 한국민와뮤지엄은 지금까지 누적 관람객이 20만명을 돌파했다.전체 방문객중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강진일보
2020.02.2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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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강진군에서 강진군향토문화유산보호 관리조례를 제정하고 제1호로 남원포 봉수대를 지정했지만 복원 사업은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조례 제정과 향토문화재로 지정은 내가 문화관광 분야에서 근무할 때 시작했으나 실제 복원공사는 퇴직후 공로연수 기간에 이뤄졌다. 실제 공사가 이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야말로 어렵게 이루어진 복원이라 할 수 있다.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 남원포봉수대 복원사업의 기간은 2017년 11월 13일 시작돼 2018년 9월 25일까지 11개월간이었다. 복원 사업비는 군비로 8천850만원을 책정해 사업을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강진일보
2020.02.20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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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후 나의 고향인 마량을 찾을때면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주인공은 바로 강진군향토유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남원포 봉수대이다.이 봉수대는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설계도와 씨름하고 거의 매일 봉대산 정상에 오르면서 복원 공사를 지휘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만큼 많은 애정을 갖고 복원했던 곳이라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내가 태어난 산동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마량면 원포리 산41번지 봉대산 정상에 아주 오래된 봉수대가 하나 있다. 이 곳이 바로 남원포 봉수대인데 해발 358m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윤순학의 향토문화가 자산이다
오기안 기자
2020.02.12 18:36